이란 “2∼3개 주요 이슈에 이견”
美, 고농축 우라늄 전량 반출 요구
이란 “핵은 안보 마지막 방패” 거부
해협 개방 시점 놓고도 ‘동상이몽’
이란, 배상 등 ‘4대 레드라인’ 조건
자산 동결 해제 요구도 쟁점 부상
‘빈손’으로 마무리된 종전 1차 협상에서 이란과 미국은 기존의 핵심 조건들을 둘러싸고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표면적으로는 협상 재개와 종전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실제로는 양측 모두 주요 의제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어 최종 합의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11일(현지시간) 저녁부터 밤새 진행된 협상이 종료된 뒤 이란 외무부는 “2∼3개 주요 이슈에 대한 이견으로 합의가 불발됐다”며 난항을 인정했다. 구체적인 쟁점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외신들은 호르무즈해협과 핵 문제가 가장 첨예한 대립 지점이었다고 전했다.
이란 핵위협이 미국이 내세운 전쟁 명분인 만큼, 핵위협 제거는 종전의 핵심 조건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란이 보유한 고농축 우라늄 전량을 미국으로 옮기는 것에 더해, 향후 이란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자체를 제한함으로써 핵무기 개발 잠재력까지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란은 이를 사실상 ‘항복 요구’로 받아들이고 있다. 보유 중인 핵물질뿐 아니라 미래의 핵무기 개발 잠재력까지 포기하라는 요구는 안보의 마지막 방패를 내려놓으라는 압박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핵 문제는 협상 의제 가운데서도 양측이 가장 타협하기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J D 밴스 미 부통령도 협상 후 기자회견에서 “문제는 이란이 지금뿐 아니라 2년 후에도, 장기적으로도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근본적인 의지를 가졌는지 확인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우리는 아직 그런 확약을 보지 못했지만, 보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이란 측은 “미국 대표단이 호르무즈해협과 핵물질 제거를 포함해 전쟁에서 얻지 못한 양보를 협상에서 얻어내려 했다”면서 “미국 측은 탐욕스러운 마음가짐 탓에 이성과 현실감각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호르무즈해협 논의와 관련,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복수의 이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은 호르무즈해협을 즉각 개방하라고 요구한 반면, 이란은 최종 합의가 타결된 이후에야 해협을 열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보도했다.
이란으로서는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현재 쥐고 있는 가장 강력한 협상 카드인 만큼, 해협을 먼저 개방하는 것은 전쟁과 협상에서 확보한 지렛대를 스스로 내려놓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미국은 해협 봉쇄가 글로벌 유가 상승과 미국 경제에 주는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해협 통행 정상화를 이번 협상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삼고 있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해, 이 문제만으로도 합의 도출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호르무즈해협 통제권 문제도 걸림돌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협상 관계자들을 인용해 “호르무즈해협 통제권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며 미국은 이란과 함께 해협을 공동 관리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이란은 이를 거부하고 단독으로 통행료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설명했다.
이란의 요구도 미국 측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란 국영 IRIB방송에 따르면 이란은 회담 전 △호르무즈에 대한 통제 권리 인정 △전쟁 피해 배상 △이란의 해외 동결자산 해제 △중동 전역에서의 교전 중단 등 4가지 ‘레드라인’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 ‘전쟁 피해 배상’은 자국의 승리를 내세우는 미국이 인정하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합의 여부는 내게 상관없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이긴 것”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통신은 “미국 측이 ‘이란이 우리의 조건을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전쟁의 패자가 합의 조건을 정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NYT는 파키스탄 관계자가 이란이 미국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산 동결 해제를 요구한 것이 회담의 또 다른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남은 휴전 기간 협상은 재개될 전망이지만 타결 가능성은 안갯속이다. 양측의 요구 조건과 주장이 전쟁 직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도 전망을 어둡게 한다. 지난 2월 미국과 이란은 핵 문제를 둘러싸고 이견을 확인한 상태에서 다음 협상 일정을 앞두고 있었고, 미국은 그사이 전쟁에 나섰다. NYT는 “(현재) 밴스가 겪는 교착 상태는 2월 말 협상을 탈선시킨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군사 공격을 받으면 마음을 바꿀 것이라 여겼지만, 이란은 아무리 많은 공격을 받아도 그들을 굴복시키지 못할 것임을 보여주려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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