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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함성·촛불 대신 응원봉… ‘글로벌 무대’로 새 역사 [심층기획-BTS, K팝 새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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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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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파란만장 광화문, 세계인 ‘광장’으로

BTS 컴백공연 세계가 이목 집중
축제·저항·환호·분노가 응축된 곳
왕권의 공간서 광장 민주주의로

경복궁 중건 당시 불렀던 타령이
아리랑으로 발전, 전국으로 확산
K팝 형태로 상징적 장면 만들어

서울의 중심, 광화문광장이 다시 한번 역사의 무대가 됐다. 경복궁의 웅장한 석벽을 병풍 삼고 북악산이 굽어보는 거대한 화폭 위에 신보 ‘아리랑’을 들고 온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공연이 전 세계 190여개국으로 실시간 번져 나갔다. 이번 무대가 특별한 것은 세계적인 K팝 아이콘의 귀환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공연장인 광화문은 축제와 저항, 환호와 분노가 교차하며 한국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받아낸 공간이다. 월드컵의 붉은 함성이 울려 퍼지고, 촛불 수천만개가 어둠을 밝혔으며, 응원봉이 계엄의 밤을 밀어냈던 바로 그 자리다. 21일 밤 펼쳐진 ‘BTS 더 컴백 라이브 | 아리랑’은 켜켜이 쌓인 기억 위에서 광화문이 ‘세계인의 광장’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9;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39; 발매 기념 컴백 공연을 하고 있다. 빅히트 뮤직·넷플릭스 제공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 발매 기념 컴백 공연을 하고 있다. 빅히트 뮤직·넷플릭스 제공

앨범 ‘아리랑’과 무대 ‘광화문’ 사이에는 우연 이상의 역사적 공명이 있다.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가 된 데는 경복궁이 직접적 계기를 제공했다. 강원도 정선에서 구전되던 지역 민요 ‘아라리’는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수공사를 계기로 경기도에 전파되면서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아리랑 연구가들에 따르면 경복궁 중건 당시 팔도에서 모인 백성들이 함께 불렀던 아리랑 타령이 이후 전국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매천야록에 고종이 궁중에서 아리랑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으며, 경복궁 공사를 위한 징용의 가혹함이 아리랑에 얽혀 전해지면서 ‘흙의 소리’에서 ‘역사와 사회의 소리’로 탈바꿈하는 결정적 동기가 됐다고 설명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저항의 노래로, 분단의 시대에는 이산의 노래로 불리며 아리랑은 시대마다 새로운 의미를 입어왔다.

광화문 역시 시대의 감정이 응축된 장소였다. 이곳이 처음부터 ‘광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600년 동안 이곳은 왕권의 공간이었다. 경복궁의 정문 앞, 문무백관이 도열하던 육조거리는 엄숙한 권위의 축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이 공간을 서서히 시민의 것으로 돌려놓았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은 이 광장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사건이었다.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거리 응원을 펼치면서 광화문은 국가적 축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수십만명이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은 순간에 환호했던 경험은 ‘함께 모이는 공간’으로서 광장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광화문 광장이 걸어온 길 수많은 시민들이 운집해 대한민국 현대사의 희로애락을 함께 써온 광화문광장의 주요 장면들. 왼쪽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 거리 응원, 2016년 박근혜정부 국정논단 촛불집회, 2024년 윤석열 전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 2026년 방탄소년단(BTS) 컴백 공연. 세계일보 자료사진·연합뉴스
광화문 광장이 걸어온 길 수많은 시민들이 운집해 대한민국 현대사의 희로애락을 함께 써온 광화문광장의 주요 장면들. 왼쪽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 거리 응원, 2016년 박근혜정부 국정논단 촛불집회, 2024년 윤석열 전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 2026년 방탄소년단(BTS) 컴백 공연. 세계일보 자료사진·연합뉴스

광화문이 진정한 시민의 광장으로 각인된 것은 기쁨이 아닌 분노의 시간들을 통해서였다. 2016년부터 이어진 촛불집회는 그 상징성을 결정적으로 각인시켰다. 수많은 시민이 평화적으로 광장에 모여 의사를 표현했고, 이는 결국 헌정 질서의 중대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광화문은 단순한 집회 장소를 넘어 시민 참여가 현실 정치로 이어지는 현장이 됐다. 이 과정에서 ‘광장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최근에도 광화문은 중요한 분기점마다 등장했다.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이를 둘러싼 집회가 이어지며 이곳은 다시 한번 사회적 긴장이 응축되는 공간이 됐다.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하는 가운데에서도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자신의 입장을 드러냈다. 광화문은 갈등을 드러내는 장소이자, 그 갈등을 통해 사회가 움직이는 과정을 보여주는 공론장이었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표현 방식이었다. 촛불 대신 응원봉을 쥐고, 민중가요와 K팝이 뒤섞인 현장은 기존의 집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정치적 메시지와 대중문화가 결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집회였다. 이는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독특한 민주주의의 풍경이자, 민초의 삶과 감정을 담아 시대마다 변주돼 온 ‘아리랑’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9;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39; 발매 기념 컴백 공연을 하고 있다. 빅히트 뮤직·넷플릭스 제공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 발매 기념 컴백 공연을 하고 있다. 빅히트 뮤직·넷플릭스 제공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9;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39; 발매 기념 컴백 공연을 하고 있다. 빅히트 뮤직·넷플릭스 제공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 발매 기념 컴백 공연을 하고 있다. 빅히트 뮤직·넷플릭스 제공

이날 펼쳐진 ‘BTS 더 컴백 라이브 | 아리랑’ 역시 150여년 전 경복궁 공사장에서 민초의 입을 통해 전국으로 퍼진 노래가 같은 장소에서 K팝이라는 형태로 전 세계에 동시 송출되는 역사적 무대였다. 오픈형 큐브 구조의 무대가 경복궁을 액자 삼아 역사의 공간을 온전히 품어냈다. 멤버 제이홉은 “한국에서 가장 역사적 공간인 광화문에서 무대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라며 “이번 앨범에는 정체성을 담고 싶었고 그 마음을 담아 광화문에서 무대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쉬움 뒤로 하고 3년 5개월 만에 완전체로 복귀한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BTS 컴백 라이브 | 아리랑’ 공연 다음날인 22일 관계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무대를 해체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아쉬움 뒤로 하고 3년 5개월 만에 완전체로 복귀한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BTS 컴백 라이브 | 아리랑’ 공연 다음날인 22일 관계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무대를 해체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광화문은 민주화의 열망이 모였던 공간에서 월드컵이라는 축제를 거쳐 촛불 시위로 이어지며 축제와 민주화가 겹쳐진 광장이 됐고, 이제는 K컬처를 전 세계에 보여주는 공간으로 확장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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