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천만 작품… 韓 영화 25번째
단종 비극+성장 서사…현실 감정과 공명
“지도자 지키고 싶은 마음” 1000만 울려
청령포·서점가…스크린 넘어 문화 현상으로
‘단종 신드롬’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 장항준 감독)가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6일 배급사 쇼박스에 따르면, ‘왕사남’은 이날 오후 6시 32분 누적 관객 수 1000만명을 기록했다. 2024년 4월 개봉한 ‘범죄도시4’ 이후 약 1년 10개월 만에 나온 천만 영화다. 국내 개봉작 기준으로는 역대 34번째, 한국 영화로는 25번째 천만 기록이다.
초기 흥행 지표는 평범했다. 지난달 4일 개봉 첫날 관객은 약 11만7000명, 개봉 첫 주말(금∼일요일) 사흘 누적 관객은 76만 명에 그쳤다. 그러나 입소문이 쌓이며 흥행에 가속이 붙었다. 주말 관객 수는 76만 → 95만 → 141만 → 175만 명으로 꾸준한 오름세를 이어갔다. 하루 최다 관객 기록은 개봉 4주 차이던 삼일절(약 81만명)에 나왔다.
영화의 여파는 스크린을 넘어 확산됐다. 극의 배경인 강원 영월에는 단종의 흔적을 찾아 나선 관광객이 몰렸고, 관련 도서 판매도 폭증했다.
◆“서로를 바꾼 두 사람…감정 몰입이 천만 만들어”
천만 영화의 스토리텔링을 분석한 책 ‘천만 코드’(2025, 프런트페이지) 저자 길종철 한양대 연극영화과 교수(전 CJ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왕사남’의 흥행 비결을 캐릭터 아크에서 찾았다. 인물이 갈등을 겪으며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이 관객의 강력한 몰입을 끌어냈다는 분석이다.
길 교수는 “‘왕사남’은 단종의 비극을 보편적 성장 서사에 정확하게 결부시킨 사례”라며 “두 주인공인 단종 이홍위(박지훈)와 영월 광천골 촌장 엄흥도(유해진)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함께 성장하는 구조가 핵심”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두 인물 중 어느 한 명만 강조했다면 지금과 같은 반향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극 중 엄흥도는 마을의 영달을 위해 다소 이기적으로 이홍위를 마을에 데려왔지만, 어리지만 반듯하고 기개가 있는 군주의 모습 보며 그를 지켜야겠다고 각성한다. 삶의 의지를 잃어 식사마저 중단했던 이홍위는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을 보며 다시 일어서겠다는 결심을 한다. 비극적 결말이 예정되어 있기에, 이들의 변화는 관객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결국 단종은 죽는다. 선한 인물은 패배하고 악한 인물은 승승장구하는 익숙한 아이러니가 울림을 더한다. 장항준 감독은 이날 쇼박스를 통해 공개한 서면인터뷰에서 “자신의 이익을 넘어 옳은 일을 한다는 것, 각자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마지노선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지켜주고 싶은 마음…‘왕사남’ 천만 만든 감정”
개봉 초기 일부 관객과 평론가 사이에서는 영화의 완성도를 두고 비판이 일었다. 초반 전개의 작위성, 어색한 컴퓨터그래픽(CG), 금성대군 서브플롯의 미흡함 등이 주로 지적됐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을 끌어모았고, 불붙은 감정의 공감대는 문화 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
영화 배경인 청령포는 올해 설 연휴 기간 예년보다 5배 이상 관광객(약 1만1000여명)을 기록했고, 삼일절 연휴에는 도선 매표가 조기 마감될 정도로 방문객이 폭증했다. 서점가에서도 관련 도서 판매가 급증했다. 예스24에 따르면 영화 개봉 이후 약 한 달간 ‘단종’ 키워드 도서 판매량은 전년 대비 2565.4% 증가했다. 작품성을 넘어, 이 영화에 대중의 역사적 관심과 정서적 갈증을 해소하는 지점이 있다는 의미다.
홍수정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의 흥행을 한국 사회의 정치적 경험과 연결해 해석했다. 그는 “세 번의 대통령 탄핵 정국을 겪으며, 지지하던 지도자가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본 경험은 진영을 막론한 보편적 경험이 되었다”며 “‘왕사남’은 엄흥도가 백성의 한 사람으로 폐위된 왕을 마지막까지 보필한다는 설정을 통해 좌절감, 지켜주지 못했다는 부채감 같은 감정을 어루만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만듦새 측면에서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포함된 코드의 힘으로 천만 관객까지 이어진 사례”라고 덧붙였다.
길 교수 역시 “허술한 지점이 없는 영화는 아니지만, 흥행의 핵심은 결국 관객의 감정을 응집시켜 엔딩까지 끌고가는 데 달렸다”며 “이 영화는 엔딩까지의 빌드업이 탁월했다”고 말했다.
‘왕사남’ 순제작비는 약 100억원 수준. 높지 않은 제작비로 괄목할 성과를 냈다. 길 교수는 “막대한 자본 없이도 기획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침체한 한국 영화계에 고무적 사례가 됐다”며 “충실한 이야기, 관객과의 감정적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한 영화”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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