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출장 중 심근경색으로 별세한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남북관계 분야에서는 공식 협상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정치적 신뢰를 매개로 관계를 조정하고 소통을 이어가는 역할이 부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가 노무현 정부 시기 국무총리로 재직했던 때(2004년 6월 30일~2006년 3월 15일)는 남북이 대화 기조를 유지하되 북핵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상존했던 시기였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해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간 교류·협력 확대를 기본 노선으로 삼았다. 이해찬 총리 재임 기간 남북 간 고위급 정치적 돌파구는 제한적이었지만, 실무 차원의 협의와 다자외교를 통해 일정한 성과들이 축적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성공단 가동이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교류협력의 하나로 추진되던 개성공단 사업은 노무현 정부 들어 본격화했다. 2004년 6월 23개 기업과 1개 기관이 첫 시범단지 입주 계약을 맺었고, 같은 해 12월 개성공단에서 첫 제품 생산이 시작됐다. 개성공단은 남측 자본과 기술, 북측 노동력이 결합된 첫 대규모 협력 사업으로 남북 경제협력의 제도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운영 초기 약 6000명 수준이던 북측 근로자는 2012년 1월 5만 명으로 늘었고, 2013년 1월에는 누적 생산액 20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러나 2016년 2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을 계기로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결정이 내려졌다.
이 수석부의장은 정치인으로 복귀한 이후에도 개성공단 운영 중단이 장기화하는 데 아쉬움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2018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 시절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개성공단을 풀려면 유엔을 설득하고 다른 나라를 설득하는 과정이 좀 있어야 될 것 같아 여러분이 기대하는 것처럼 금방 빨리 재개되기는 어렵다는 게 솔직한 상황”이라면서도 “최대한 재개가 빨리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6자회담이 진행된 시기 역시 대부분 이 수석부의장 재직 시기와 겹치거나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6자회담은 북한의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과 북한,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6개국이 참여한 다자회담이다. 2003년 8월부터 차관급을 수석대표로 2007년 3월까지 모두 여섯 차례의 회담이 개최됐다.
4차 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과 미국의 대북 불가침 의사 확인 등을 담은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이어 5차 회담에서는 북한의 핵시설 폐쇄와 불능화, 핵 프로그램 신고에 대한 조치와 함께 이에 상응하는 5개국의 중유 등 에너지 100만 톤 지원,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을 포함한 ‘2·13 합의’가 도출됐다. 6자회담은 이후 북한의 핵 보유 선언과 핵실험으로 이어지며 한계를 드러냈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다자 틀에서 관리하려는 최초의 제도화된 협의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남북이 함께 이뤄낸 최초의 문화재 환수 성과인 북관대첩비 반환 역시 이 수석부의장 재직 시절의 일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이끌던 일본군을 격파한 것을 기념해 1708년 함경북도 길주군에 세워졌던 북관대첩비는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반출돼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돼 왔다. 이후 2005년 10월 한국으로 반환됐고, 2006년 2월 남북 간 협의를 거쳐 같은 해 3월 북측 현지에 다시 세워졌다. 북관대첩비 반환은 대립과 협상이 교차하던 시기에도 남북이 민관 실무 협력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낸 장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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