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도 워싱턴을 대표하는 문화 시설 케네디 센터는 건립에 거액의 국가 예산이 투입된 공공기관이다. 자연히 행정부가 임명한 이사들이 그 운영을 감독한다. 지금껏 백악관은 케네디 센터 이사회를 구성할 때 누가 여당이고 누가 야당이든 상관없이 공화·민주 양당 인사들을 나란히 기용하는 초당적 전통을 지켜왔다. 이는 케네디 센터의 탄생 배경과 깊은 관계가 있다. 정식 명칭이 ‘존 F 케네디 공연예술 회관’(John F. Kennedy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인 이 시설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1961∼1963년 재임)를 기념하는 건물이다. 전임자인 공화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건립 계획을 세웠고 역시 공화당인 리처드 닉슨 대통령 임기 도중인 1971년 완공됐지만 정작 민주당 출신 케네디에게 헌정됐다. 보수·진보를 넘어 46세 젊은 나이에 암살로 세상을 떠난 케네디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은 같기 때문일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이 같은 초당적 전통이 산산조각 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올해 2월 케네디 센터 이사장 등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임명된 이사 전원을 해고했다. 그리고 “케네디 센터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며 스스로 새 이사장이 되었다. 지난 8월 22일 사전 예고 없이 케네디 센터를 방문해 일부 시설을 점검한 트럼프는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조 추첨식을 케네디 센터에서 열 예정”이라고 전격 발표했다. 월드컵 조 추첨식이 케네디 센터의 문화적 위상에 걸맞은 행사인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케네디 가문은 진보 성향의 민주당을 대표하는 정치 명가(名家)로 통한다. 오늘날 케네디 집안 사람들은 선거, 특히 대선 때마다 민주당 후보를 후원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로버트 케네디(1968년 사망)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71)가 이런 전통을 깼다. RFK라는 이니셜로 더 유명한 그가 2024년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트럼프를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배신자’ 등 온갖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트럼프 곁을 굳게 지킨 RFK는 정권 교체 후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되는 것으로 확실한 보상을 받았다. RFK는 출세욕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쳐도 트럼프가 왜 케네디 집안 사람 영입에 그토록 공을 들였는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최근 트럼프가 케네디 센터를 ‘트럼프/케네디 센터’로 개명한 것을 보니 비로소 의문이 풀린다. 케네디 가문 구성원들이 똘똘 뭉쳐 반대한다면 천하의 트럼프도 케네디 센터에 손을 대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RFK가 트럼프 행정부의 각료로 있는 만큼 트럼프로선 ‘내가 케네디 유산의 승계자’라고 주장할 명분이 생긴 셈이다. 케네디 센터의 명칭 변경에 반발하는 민주당 측 인사가 22일 연방법원에 이를 무효화해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냈다고 하니 사법부 판단을 지켜볼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2024년 대선을 앞두고 RFK를 영입할 때부터 트럼프에겐 다 계획이 있었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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