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벨트서 본 트럼피즘
철강·중공업 등 쇠퇴에
아메리칸 드림 ‘산산조각’
민주당에 실망한 시민들
“트럼프가 미국 바꿀 것”
민주 지지해온 피츠버그 근교 지역
“지미 카터 이후 큰 실망” 등 돌려
“일본제철과 파트너십… 일자리 늘 것”
과거 번영 향수 남아 트럼프 지지
트럼피즘 확산 창구로 SNS 꼽혀
일부 지지자들 음모론까지 맹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근교 US스틸 공장 마을 브래드독(앨리게니 카운티)에서 트럭 운전업을 하는 맨(57)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세계일보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의 집에서 약 8분만 차를 타고 가면 19세기 후반부터 약 100년간, 미국 역사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 미국 제조업을 지탱했던 피츠버그 철강산업의 마지막 흔적인 US스틸 공장이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1970년대부터 제조업이 미국을 빠져나가면서 피츠버그 주변의 철강산업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역 경제는 쇠퇴하고 일자리는 줄었다. 열심히 일하면 집을 살 수 있고, 자식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깨졌다. 사람들이 떠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상실감에 휩싸였다.
강력한 노조 문화를 바탕으로 민주당을 지지했던 피츠버그 근교 비버 카운티, 워싱턴 카운티 등은 지난 대선에서 모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도시 피츠버그가 포함된 앨리게니 카운티에선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의 표가 좀 더 나왔지만, 앨리게니 카운티에서도 브래드독 같은 근교로 나오면 트럼프 대통령에 열광하는 지지자가 많았다. 전형적인 미국 ‘러스트벨트’ 마을의 우경화 이야기가 이 지역에 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쇠퇴한 지역 경제로 인한 상실감, 예전의 번영에 대한 향수, ‘엘리트’에 대한 분노를 말했다. 이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기대로 연결된다.
트럭운전사 맨은 노조에 처음 가입하던 시절 민주당 등록 유권자였다. 노조가 큰 영향을 미치는 이 지역에서 “처음부터 나는 공화당 지지자였다”고 말하는 이는 찾기 어려웠다. 이들은 자신들을 ‘공화당원’이라 말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로 트럼프 전의 공화당 대통령을 지지한 적이 없다.
맨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이후 민주당에 크게 실망했다”고 했다. 남부 조지아주 출신 카터 전 대통령은 블루칼라 노동자들과 정서적으로 연결된 마지막 민주당 대통령으로 꼽힌다. 이후 미국 전반에 탈산업화가 일어나며 민주당은 금융·기술계, 고학력, 도시 중심의 엘리트 정당 이미지를 얻었고, 노동자 계층은 민주당으로부터 소외됐다고 느꼈다.
맨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일 펜실베이니아주 마운트 포코노에서 한 연설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연설 내용대로 “지금의 경제 악화는 민주당이 만든 것이며, 내년(2026년) 초 인플레이션율이 낮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또 “일본제철의 US스틸 매각으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US스틸의 일본제철 매각을 막겠다고 했지만, 당선 뒤 이를 승인했다. 그는 “US스틸과 일본제철 간 파트너십이 미국 경제에 일자리 7만개 이상과 140억달러를 가져다줄 것”이라며 펜실베이니아주 사상 최고의 외자 유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맨뿐 아니라 피츠버그 근교 대부분 지역에서 만난 이들이 US스틸의 일본제철 매각이 지역 경제를 발전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였다. 스스로 민주당 지지 성향이라고 밝힌 이들도 그랬다.
맨은 “현재 노조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남아 있다면 ‘엘리트 활동가들’”이라며 “‘워킹 클래스’(노동계층) 노조원은 100%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가 미국을 바꿀 것”이라고 단언했다.
◆탈산업화의 소외가 트럼피즘으로
피츠버그 시내에서 차로 약 40분 떨어진 비버 카운티 앨리퀴파의 중심지 프랭클린 애비뉴는 과거 영광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거리는 심각하게 훼손된 빈 건물들로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1852년 설립돼 US스틸과 함께 미국 철강사의 양대 산맥이었던 J&L스틸의 공장이 있던 지역이다. 상업 중심지였던 이곳에 위치한 한 로코코 양식의 건물은 창문이 깨져 있고 곳곳이 훼손돼 있었다. 지나는 사람도 없는 길에 앉아 종일 시간을 보내는 흑인 할아버지 찰리(가명·71)는 “그 건물은 예전엔 댄스 클럽으로 사용되던 곳”이라며 “사람들이 떠난 뒤 매물로 나왔지만 팔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앨리퀴파의 전성기에 바텐더로 일한 그는 이후 이렇다 할 직업을 갖지 못했다.
J&L 공동설립자인 벤저민 프랭클린 존스는 앨리퀴파를 번듯한 ‘철강 타운’으로 만들길 원했다. 철강 공장 옆에 마을, 학교, 술집, 카페, 교회를 지었다. 지역 경제는 부흥했다. 폴란드·이탈리아·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모여들었다. 하지만 J&L스틸이 LTV스틸에 인수되고 파산한 뒤 앨리퀴파 지역엔 이렇다 할 기업이 없었고, 근처 에틸렌 생산용 크래커 공장이 유일하게 남았다. 한때 이민자였지만 이제 미국 시민인 이들은 이제 또 다른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갈까 걱정한다. 이탈리아계로 이곳에서 델리(가벼운 음식을 파는 곳)를 운영하는 포르토는 “아버지 대부터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현재 나는 트럼프를 지지한다. 민주당은 경제를 잘 모른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텃밭이던 비버 카운티는 2016년, 2020년, 2024년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20년에도 근소하게 트럼프 대통령이 우세했다. 53년 전 결혼하면서 앨리퀴파에 와 현재까지 살고 있는 린다(75)는 “처음 이곳에 올 때는 주위의 모든 이웃이 민주당 지지였는데 현재는 나만 민주당”이라고 했다. 린다는 “산업이 떠나니 다들 떠나고,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깨졌다”며 “이웃들과 정치 얘기는 많이 하지 않지만, 이 지역에서 트럼프가 이겼다는 사실이 놀랍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찍은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트럼프는 계속 이 지역에 제조업을 되돌려주겠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랬는가”라고 지적했다.
◆“여자는 여자, 남자는 남자”
이곳의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은 미국의 ‘워크(woke)’ 문화에도 반발심이 많았다. 워크란 ‘깨어 있다’는 뜻으로, 백인·남성 등 주류에 맞서 인종·여성 등 차별을 경계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앨리게니 카운티의 또 다른 철강 마을 매키스포트에서 만난 팻(65)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를 묻자 “여자는 여자, 남자는 남자 아니냐”며 “왜 그런 간단한 것조차 다르게 얘기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노동계층 사람들에게 워크 문화는 자신들과 다른 엘리트 세계의 언어로 인식되는 것으로 보였다. 팻은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 역시 ‘엘리트의 통제’로 여기는 듯했다. 그는 “그 사람들(바이든 행정부)이 백신을 강요한 이래로 나는 완전히 트럼프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백신을 접종하고 공식적으로 반대하지 않았지만, 백신 회의론자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를 복지장관에 임명함으로써 이들과 결을 같이했다.
브래드독의 펍에서 만난 흑인 정비공 지미(51)도 “나는 트럼프를 지지한 적도 없고 인종차별주의자인 그를 앞으로도 지지할 생각이 없지만, 트럼프와 생각이 같은 것이 하나 있다”며 “왜 남자가 여자 스포츠팀에서 뛰는 것인가”라고 했다.
트럼피즘의 매개체는 역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과 소통하는 데 재미를 느끼는 이가 많았다. 손님을 맞는 시간 외엔 종일 SNS를 하는 펍 주인 메릴린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를 설명하다가 대뜸 “미셸 오바마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냐”고 말했다. 극우 인플루언서들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엘리트층을 공격하기 위해 SNS를 통해 반복적으로 생산하는 대표적인 음모론 중 하나다. 뉴욕타임스(NYT) 등 주류 매체는 음모론이 극우 인플루언서들을 거치며 확산하는 과정을 다루며 이 음모론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밝힌 바 있으나, 이들은 주류 매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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