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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와 동고동락 70년… 종교에서 사회공헌 플랫폼으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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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2-23 11:13:54 수정 : 2025-12-23 11: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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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70년의 여정이 남긴 것

 

2025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이 창립 71주년을 맞았다. 1954년 한국전쟁의 잔해가 채 가시지 않은 서울에서 출발한 이 조직은 70여 년간 한국 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변화해왔다. 종교 단체로 시작했지만, 오늘날 가정연합은 교육·구호·문화·평화 영역을 아우르는 사회공헌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70년의 역사는 단순한 시간의 축적이 아니다. 전후 재건기의 구호 활동에서 시작해 산업화 시대의 교육 투자, 세계화 시대의 평화운동, 21세기 지속가능성 시대의 포괄적 사회공헌으로 진화해온 궤적이다. 가정연합은 이 과정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적 역할을 앞서 읽고 그에 맞춰 활동 방식을 재구성해왔다.

 

본 특집은 가정연합의 70년 여정을 객관적 시각으로 되짚어본다. 창립부터 현재까지 시대별 주요 활동과 전환점, 한국 사회에 구축한 ‘생활형 공헌 구조'의 특징, 그리고 구호에서 지속가능성으로 이어지는 변화를 중심으로 가정연합이 걸어온 길을 조명한다.

 

◆1950∼60년대:전후 혼란기-종교적 이상과 지역사회 봉사

 

폐허 위에 세워진 희망

 

1954년 5월 1일, 서울 성동구 북학동의 작은 건물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가 창립됐다. 한국전쟁 휴전 후 불과 10개월 만이었다. 전쟁으로 국토는 황폐화됐고, 수많은 전쟁미망인과 고아들이 거리를 헤맸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사람들은 육체적 궁핍과 정신적 공허 속에서 방황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가정연합은 초기부터 두 가지 방향성에 초점을 맞춘 활동들이 나타났다. 하나는 ‘참가정'의 이상을 통한 정신적 가치 회복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통받는 이웃을 돕는 구체적 실천이었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조직은 서서히 외연을 넓히기 시작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지방 주요 도시로 조직이 확산되었고, 각 지부는 새 말씀을 통한 가정의 가치 회복과 함께 야학과 유치원 운영을 비롯해 영농 지원, 노인 시설 방문 등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봉사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 중학교 진학조차 꿈꾸기 어려웠던 농어촌 청소년들을 위해 목회자와 청년, 고등학생들이 야간학교 교사로 나섰다. 이들은 학교 운영비 마련을 위해 대도시로 올라가 연필장수와 엿장수, 비누장수 등 닥치는 대로 행상을 했고, 때로는 구두닦이 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실로 충주 지역 야학인 성화학원에서는 700여 명에 이르는 졸업생이 배출되었으며, 이들은 훗날 지역 사회를 떠받치는 향토의 역군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당시 다른 종교·민간 단체들의 노력과 함께 전후 사회 재건의 한 축을 이뤘다. 그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은 이후 해외로까지 확장되었다.

 

반공과 도덕 재무장의 시대

 

1960년대는 한국 사회가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을 거치며 정치적 격변기를 맞은 시기였다. 이 시기 가정연합은 반공 이념과 도덕 재무장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전통적 가족 유대가 약화되는 상황에서, 가정의 가치를 강조하는 가정연합의 메시지는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시기 가정연합은 국제승공연합을 조직해 공산주의의 오류를 비판하고 민주주의와 자유, 평화를 강조하는 승공(勝共) 이념을 전파했다. 이 과정에서 가정연합의 승공 활동은 국가 주도의 반공 정책과 접점을 형성하며 긍정적 평가와 비판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 가정연합은 국내에 14개 시·도지부, 230개 시·군지부, 3,416개 읍·면·동지부를 두고, 직·간접 참여자를 포함한 추산치로 60여만 명의 연수교육 수련자와 700만 회원을 보유했으며, 나아가 아시아와 유럽, 북미·남미,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 100여 개국에 활동 거점을 두고 승공운동을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해왔다.

 

◆1970∼80년대:국제화의 가속과 교육·문화 투자

 

세계로 향하는 발걸음

 

1970년대는 가정연합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창립자인 문선명·한학자 총재 내외가 1971년 미국으로 활동 기반을 옮기면서 미국은 가정연합 세계화의 출발지가 되었다. 문 총재 내외는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미국 전역 70개 도시를 순회하며 강연을 이어갔고, 이를 통해 미국 사회와 기독교계에 영적 각성과 도덕적 회복을 촉구했다. 그 순회강연의 정점은 1976년 9월 18일 미국 워싱턴 모뉴먼트 광장 대집회였는데, 이날 강연회에는 30만 명이 운집한 것으로 보도돼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문목사는 이 자리에서 미국이 건국 이념인 기독교 정신으로 돌아갈 것과 하나님의 창조원리로 복귀할 것을 주장했는데, 당시 많은 국내 언론에서도 문 목사의 집회를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으로 평가했다.

 

국제화는 가정연합의 활동 범위와 실천 방식 전반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다. 국가와 지역마다 문화적 맥락과 사회적 요구가 상이한 만큼, 획일적인 종교 활동보다는 각 사회의 현실에 부합하는 맞춤형 사회공헌이 요구되었다. 이에 가정연합은 한국어 보급 사업을 비롯해 교육과 문화, 언론, 사업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의 지평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략적 전환 속에서 가정연합의 선교 조직은 미국을 기점으로 일본과 유럽, 남미 등지로 확산되며 국제적 기반을 확립해 나갔다.

 

교육을 통한 사회 기여의 시작

 

가정연합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교육 기관 설립이었다. 국내외에 많은 초중등 교육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 학교는 학문적 우수성과 함께 인성교육, 학생 봉사활동을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 외국인 학생과의 공동 수업·기숙사 운영을 중시한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타인을 배려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를 기르는 것이 교육 목표다.

 

1974년 선화예술중고등학교를 설립한 데 이어 1986년에는 충남 아산에 선문대학(현 선문대학교)이 개교했다. 설립 당시부터 국제화와 실용 교육을 표방한 선문대는 IT산업 선도, 외국어 교육 강화, 해외 대학과의 적극적 교류, 다문화 학생 적극 수용 등 당시로서는 타 대학에 비해 조기도입을 시도한 것이다.

 

선문대는 설립 후 40년 가까이 지역 사회와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종합대학으로 성장했다. 외국어, 국제통상, 공학, 자연과학, 인문사회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국제화는 선문대의 가장 큰 특징이다. 현재 세계 80여 개국에서 온 외국인 유학생이 재학 중이며, 해외 대학과의 교환학생 프로그램도 활발하다.

 

◆1990∼2000년대:평화운동의 제도화와 다문화 지원의 체계화

 

평화 NGO로의 전환

 

냉전 종식과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1990년대 가정연합은 평화운동을 본격적으로 제도화했다. 1991년 세계평화여성연합(WFWP)이 창설돼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포괄적 협의지위를 획득했다. 이는 가정연합 관련 조직이 국제 NGO로 공식 인정받은 초기사례 중 하나였다.

 

여성연합은 여성의 역량 강화, 모자보건, 교육 증진, 평화 구축 등의 활동을 전개하며 국제사회에서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특히 개발도상국 여성들의 문해교육, 직업훈련, 소액대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했다. 유엔 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며 여성과 평화 의제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을 위한 플랫폼 구축에 주력했다. 기독교, 이슬람, 불교, 유대교, 힌두교 등 세계 주요 종교 지도자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대규모 컨퍼런스를 정기적으로 개최했다. 이러한 노력은 예루살렘평화대행진, 중동평화회의, 세계초종교초국가연합 운동으로 이어졌고, 2005년 천주평화연합(UPF) 창설로 이어졌다.

 

UPF는 종교 지도자뿐 아니라 정치인, 학자, NGO 활동가, 기업인 등 다양한 분야의 리더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플랫폼으로 설계됐다. 분쟁 지역의 갈등 조정, 종교 간 화합 촉진, 평화 교육 확산, 지속가능한발전 논의 등 폭넓은 의제를 다뤘다. UPF 역시 UN경제사회이사회로부터 NGO ‘포괄적 형태의 협의 지위'를 획득했으며, 유엔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며 국제 평화 NGO로서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국내에서 시작된 교육·구호 활동은 이후 국경을 넘어 네팔과 캄보디아 등 교육 인프라가 취약한 오지 국가로 이어지며, 초·중등학교 건축과 도서관 건립,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 교보재 지원 등으로 확장되었다. 단발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지역 사회의 자립과 미래 세대 육성을 목표로 한 지속적인 교육 봉사로 발전하면서, 가정연합의 활동은 세계 오지 지역을 아우르는 국제적 사회공헌 모델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선학평화상: 평화운동을 조명하는 국제상

 

2015년, 가정연합은 국제적 평화상인 선학평화상(Sunhak Peace Prize)을 제정했다. 이 상은 인류의 평화와 복지 증진에 탁월한 기여를 한 개인과 단체를 발굴·격려하고, 그 성과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존의 국제 평화상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종교 간 화합과 갈등 해소, 인류애 실천, 지속가능발전 등 인류 공동의 과제에 대해 국제적 차원에서 실질적 성과를 이룬 주체들을 조명해 왔다.

 

초대 수상자는 전 세계에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며 해양보호구역 합의를 끌어낸 기후행동 리더 키리바시 공화국 전 대통령 아노테 통 박사와 친환경적인 양식 어종을 개량하여 동남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식량안보에 기여한 모다구두 비제이 굽타 인도 양식 과학자이다. 2017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사키나 야쿠비 난민 교육가와 지노 스트라다 이탈리아 의사가, 2019년에는 와리스 디리 소말리아 인권운동가와 아킨우미 아데시나 아프리카개발은행 총재가 수상했다.

 

선학평화상은 수상에 그치지 않고, 수상자들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며 그들의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플랫폼 역할을 해오고 있다. 시상식과 함께 개최되는 국제 컨퍼런스는 전 세계 평화 활동가, 학자, 정책입안자들이 모여 평화 의제를 논의하는 장이 됐다.

 

순국선열 보은·평화계승 사업

 

가정연합은 애국지사와 순국선열의 희생을 기리는 다양한 민간 노력에 참여하며 독립운동의 정신을 한일 화해와 동북아·세계 평화로 확장해왔다.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을 중심으로 여순법정기념관을 조성·보존하며, 안중근 의사의 애국정신과 동양평화 사상을 국제 평화 담론 속에서 조명해온 시도가 그 대표적 사례다.

 

아울러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일본인회’는 일본의 역사 왜곡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역사 문제를 성찰하는 취지로 사죄의 뜻을 표명하며 서대문 독립공원과 서대문형무소 일대에서 한일합동 위령제를 지속적으로 개최해왔으며, 문윤국선생기념사업회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문윤국 선생의 독립운동과 교육적 업적을 기리고 계승해왔다. 이러한 활동들은 민간 차원의 사죄와 역사 성찰, 보존과 교육을 결합해 과거의 희생을 미래 평화로 잇는 가정연합의 이러한 활동들은 민간 차원에서의 역사 기념과 평화 담론을 연결하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국제결혼과 다문화가정 지원 활동

 

1980년대는 가정연합의 두드러진 현상인 6000쌍, 6500쌍 등으로 이어지는 수천 쌍 규모의 국제합동결혼식이 본격화된 시기다. 198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대규모 국제 합동결혼식으로 인해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 배우자 수가 급증했다. 가정연합은 이를 통해 이미 수천 쌍의 다문화가정이 형성되었다. 한편 이러한 국제합동결혼은 개인의 선택과 문화 적응, 인권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과 비판도 함께 불러왔다. 무엇보다 이들의 한국 사회 적응은 가정연합에게 중요한 과제였고, 동시에 사회적 책임이기도 했다.

 

가정연합은 1990년대부터 다문화종합복지센터를 설립해 다문화가정이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한국어 교육과 한국 문화·생활 적응 프로그램, 시부모와 배우자 관계 개선을 위한 가족 상담을 통해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갈등과 정서적 고립을 완화해 왔으나 한계도 존재했다. 또한 자조 모임을 운영해 비슷한 처지의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경험을 나누고 상호 지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자녀 출생 이후에는 이중언어 교육과 정체성 존중 교육을 지원하고, 학교 입학 후에는 학업 지도와 진로 상담, 학교생활 적응 프로그램까지 연계했다. 나아가 직업교육과 취업·창업 지원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도왔으며, 일부 여성들은 다문화 강사, 통역사, 한국어 교사 등 자신의 언어적·문화적 배경을 살린 전문직으로 진출했다. 이러한 통합적 지원은 정부 정책을 보완하는 민간 영역의 강점으로 평가받으며 가정연합을 다문화가정 지원 분야의 하나의 선도적사례로 평가되기도 했다.

 

장학사업의 전개

 

장학사업은 가정연합의 사회공헌 가운데 장기간 지속되어 온 핵심 영역 중 하나다. 효정세계평화재단, 선문대학교, 세계평화여성연합,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등 산하기관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 사업이 지속적으로 전개됐다. 특히 2012년 문 총재 성화 이후 전 세계에서 추모와 기념의 뜻으로 모인 성금 500억 원과 문 총재가 사용하던 헬기 판매금을 포함해 1100여 억원이 장학사업의 중요한 기금이 됐다. 이를 통해 국내 4,416명, 해외 1,571명 등 총 5,987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장학 사업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배려를 원칙으로 운영되며, 다문화가정 자녀, 저소득층 가정 학생, 북한이탈주민 및 한부모가정 자녀를 핵심 지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는 재정적 지원을 넘어 멘토링 기반의 학업·진로 지원 체계를 결합한 통합적 인재 육성 모델을 지향하며, 장학생들이 장기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구조를 목표로 한다.

 

문화예술: 60년을 이어온 문화 외교

 

리틀엔젤스 예술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은 가정연합의 문화예술 활동을 대표하는 조직이다. 이들은 60년 이상 활동하며 한국 문화예술의 세계화와 대중화에 기여해왔다.

 

어린이 고전 무용단인 리틀엔젤스는 1962년 창단 이후 150여 개국, 6천여 회 이상 공연을 펼치며 국위선양에 기여했다. 1973년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을 위한 위문 활동과 2000년대 들어 한국전 참전국 사회와 참전용사를 대상으로 해외 보은 공연으로 이어졌다. 리틀엔젤스는 한국의 전통 춤과 음악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선보이며, 세계 각국에서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문화 외교관 역할을 해왔다. 유엔본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어전(御前) 공연, 백악관, 크렘린궁 등 각국 정상들이 참석한 공식 행사에서 공연했다. ‘리틀엔젤스'는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공연을 보고 어린이무용단에게 사용한 표현에서 비롯됐다.

 

유니버설발레단은 1984년 창단 이후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지젤』 등 클래식 발레의 명작들을 꾸준히 공연했다. 해외 유명 발레단과의 교류 공연, 세계적 무용수 초청 공연 등을 통해 국내 발레 애호가들에게 수준 높은 공연을 선사해왔다. 젊은 발레 인재들에게 실질적인 무대 경험을 제공하며, 한국 발레계의 인재 양성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 결과 문훈숙, 강예나, 이상은, 강미선 등 다수의 세계적 무용수를 배출하며 한국 발레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이들 예술단의 특징은 수익성보다 예술적 가치와 문화 교류를 중시해 온 것으로 평가된다. 수익성이 낮더라도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예술이 지닌 사회적·공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역점을 두고 활동해왔다. 이러한 행보는 가정연합의 사회공헌이 일회적 지원이나 물질적 후원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사회적 가치의 지평을 확장해왔음을 보여준다.

 

◆2010년대 이후:지속가능성 시대와 글로벌 거버넌스

 

환경과 지속가능성

 

2010년대는 기후변화가 인류의 실존적 위협으로 부상한 시기였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 체결과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채택은 전 세계가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중심 의제로 삼게 된 전환점이었다. 가정연합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적극 동참했다.

 

가정연합은 산하에 효정국제환경평화재단을 설립해 국내외 학술회의, 국제환경단체와 글로벌 연대 등을 통해 기후환경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으며, 2020년 이후 전국 각지의 가정연합 지부에서는 정기적인 환경정화 활동이 시작됐으며, 매년 수백 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회원들은 산과 하천, 해안 청소, 재활용 및 줍깅 캠페인, 식목 활동 등을 벌이며 일상적 봉사 활동으로 자리잡았다.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일회용품 사용 절감, 자원 재활용, 생활 속 탄소 저감 실천 등을 주제로 한 교육 프로그램도 병행됐다.

 

특히 가정연합 내부에서는 인간 중심적 관점을 넘어 자연과 생태계를 존중하는 ‘참사랑 실천’이라는 윤리적 성찰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환경 파괴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나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하는 윤리적·영적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UPF 역시 기후변화와 지속가능발전을 주제로 한 국제 컨퍼런스를 통해 종교·과학·정책 간 협력 논의를 이어갔다.

 

디지털 전환과 새로운 소통 방식

 

2010년대는 또한 디지털 기술이 사회 전반을 변화시킨 시기였다. 가정연합도 기존의 대면 중심 종교 활동에서 벗어나,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소통 구조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Peace TV, 페이스북, 유튜브 등을 통해 예배·강연·봉사 활동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해외 신도들과도 상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디지털 전환은 가속화됐다. 대면 예배와 모임이 제한되면서 온라인 예배, 화상 세미나, 원격 교육이 일상적 운영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봉사활동도 새로운 방식을 모색해야 했다. 비대면 방식의 심리상담, 온라인 멘토링, 취약계층 디지털 접근성 향상 지원 등 상황에 맞는 창의적 대응이 이뤄졌다. 특히 청소년과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멘토링 프로그램은 팬데믹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운영됐다.

 

팬데믹 초기에는 각 지부를 중심으로 마스크와 방역물품을 의료기관과 취약계층에 긴급 지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고립된 독거노인들에게 안부 전화와 생필품 배달 서비스를 제공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 가정들에게 식료품과 생활비를 지원했다.이 시기는 위기 상황에서도 활동 방식을 조정하며 사회공헌을 이어간 경험으로 남았다.

 

의료봉사·의료기관 설립

 

가정연합은 1970년대부터 국내 및 국제 의료봉사 활동을 지속해왔다. 인도적 지원과 사회공헌을 목적으로 한 의료봉사 활동은 한국, 일본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의료진이 참여해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국내 가정연합의 의료봉사는 1971년 8월 한국과 일본 의료진의 합동으로 국내 소외지역 주민 대상으로 시작되었다. 첫 활동에서는 일본 기독의료봉사단 40명과 한국 측 46명 등 총 86명이 부산, 대구, 전주에서 10일간 무료 진료를 실시했다. 이후 매년 정기적으로 진행됐으며, 1973년 활동에서는 연인원 2,000명을 진료하는 등 규모가 확대됐다.

 

한국·일본 의료진은 ‘아시아 이동의료봉사단(AMMS)'을 결성해 국제 의료봉사에도 나섰다. 처음에는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 등의 오지에서 주로 활동했다. 1994년 제24차 필리핀 활동에는 3개국 195명의 의료진이 참여했으며, 현지에 필리핀 AMMS를 설립하고 구강 보건 사업을 추진했다.

 

활동 범위는 1997년 이후 더욱 확대돼 2000년 브라질과 파라과이, 2019년 아프리카까지 진출했다. 2005년부터는 세계평화여성연합과 협력해 무료 진료를 강화했다. 여기에는 또 가정연합 산하 애원자원봉사협회 등 유관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3년간 중단됐던 캄보디아 의료봉사가 2022년 12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재개됐다. 가정연합 유관단체인 자원봉사애원 주관으로 크라티에(Kratie) 지방에서 진행된 활동에는 HJ 매그놀리아 글로벌의료재단과 선문대 국제의료봉사단이 참여했다. 현지 캄보디아 왕립행정아카데미, 왕립프놈펜대, 프놈펜의대 의료진과 협력해 730명의 주민에게 진료를 제공했으며, 충치, 당뇨, 관절염 등을 주로 치료했다.

 

가정연합은 재단 산하에 일미치과를 설립한 것을 계기로, 일본에 암 전문 일심병원과 경기도 가평에 HJ 매그놀리아 국제병원, HJ 매그놀리아 글로벌의료재단 등을 잇달아 설립하며 공공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을 중심으로 의료 지원 인프라를 확장해왔다

 

◆에필로그:70년을 넘어, 다음 세대를 향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70년 역사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다문화 사회로 발전해 온 한국 현대사의 궤적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가정연합은 ‘종교는 사회에서 어떤 책임을 다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구호와 교육, 평화와 지속가능성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실천으로 그 답을 제시해 왔다.

 

가정연합이 활동을 통해 반복적으로 강조해 온 메시지는 분명하다. 신앙은 삶과 분리될 수 없으며, 종교의 진정성은 이웃 사랑을 향한 구체적인 행동 속에서 비로소 증명된다는 믿음이다.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과 ‘참사랑'이라는 핵심 가치는 개인의 영적인 깨달음을 넘어 사회 전체의 평화와 행복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이어져 왔다.

 

70년의 발자취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 활동 방식은 유연하게 진화시키면서도 ‘가정'과 ‘평화'라는 본질적인 가치는 흔들림 없이 지켜왔다는 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논란과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해 왔다. 그러한 비판을 최대한 수용하면서 가정연합은 묵묵히 사회 공헌 활동을 이어가며 행동으로 신뢰를 쌓아왔다.

 

다가올 시대는 기후 위기, 급격한 기술 혁명, 심화되는 불평등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에 대한 해답 역시 참사랑의 실천, 건강한 가정과 공동체의 회복, 그리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깊은 성찰 속에서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70년의 역사는 끝이 아니라,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약속이다. 한 개인의 행복한 가정에서 출발하여 인류가 하나의 가족으로 화합하는 그날까지, 가정연합의 여정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참사랑으로 하나 된 세계를 향한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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