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국 관계 중시 의지 느껴져 안심
韓·日 수교 60주년 도쿄 리셉션 때
日 전현직 총리 4명 참석해 인상적
역사관·입장차 여전… 이해 폭 확대
다카이치, 야스쿠니 참배 하지 않길
2026년 창단 80년… 교류·통합에 집중
동포사회 내 신구 세대 벽 허물 것
김이중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중앙단장은 한·일 수교 60주년인 올해 누구보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60주년을 맞아 열린 여러 행사 참석 등을 위해 한 달에 두세 번씩 한국에 다녀오면서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양국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6월 주일 한국대사관이 도쿄에서 주최한 60주년 기념 리셉션에 이시바 시게루 당시 총리를 비롯해 일본의 전현직 총리가 4명이나 참석한 일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
43만 재일동포는 한·일 관계의 부침을 피부로 느끼는 이들이다. 일본 내 ‘한류 1번지’로 통하는 도쿄 신오쿠보나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사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혐한 시위로 얼룩지곤 했다. “조선인 죽어라”, “일본을 떠나라”고 외치는 우익의 혐오 발언에 몸서리치곤 했던 동포사회에겐 한·일 양국이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 나가는 지금이 더없이 소중하다.
재일동포는 일제강점기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현해탄을 건너와 지금은 5세 이후까지 태어나 살고 있다. 일본에서 살면서 일본의 언어, 문화 등에 익숙해져 있지만 한국에 뿌리를 둔 이들은 일종의 ‘경계인’으로서 양쪽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차세대 교포들이 한국인 정체성을 다시 구축하면서 ‘경계선 없는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도록 돕고 싶다는 김 단장을 지난 4일 도쿄 미나토구 민단 중앙본부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올해 환갑을 맞은 한·일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나.
“분위기는 그간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지만, 한국 대통령이 바뀌고 일본도 총리가 교체되면서 솔직히 걱정했다. 정권이 바뀌면 양국 관계가 흔들리는 경우를 많이 겪지 않았나.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일본을 찾았을 때 ‘한·일 관계가 좋아야 우리 교포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셔서 안심이 많이 됐다. 이 대통령은 일본과의 관계를 여전히 중시하고 있다. 한국 국회의원들을 만났을 때도 조심조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많이 느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역시 한국 김, 화장품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했다.”
―격세지감을 느낄 법도 한데.
“박근혜정부 시절 가나가와현 단장을 맡았었다. 그때는 일본 측 인사들이 나를 볼 때마다 ‘한국 가서 항의하라’고 할 정도로 관계가 험악했다. 문재인정부 때도 신오쿠보나 가와사키에서 혐한 시위가 빈번해 교포 사회가 많이 어려웠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고 특히 젊은 세대들의 감정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상대국의 음식이나 문화에 대해 좋아하는 것을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던 분위기는 이제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다. 지난해 양국민 1200만명이 서로를 오갔을 정도로 교류가 활성화됐다. 경제·문화적으로도 양국이 적대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수교 60주년 기념행사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도쿄에서 열린 기념 리셉션 때는 솔직히 놀랐다. 이시바 전 총리가 귀국하자마자 피곤했을 법한데도 참석했고, 전직 총리도 3명(기시다 후미오, 스가 요시히데, 하토야마 유키오)이나 왔다. 대사관 행사든 뭐든 지금껏 이런 적은 없었다. 얼마 전 오사카에서 민단이 연 행사에도 이시바, 기시다 전 총리가 메시지를 보내줬고, 전현직 관료도 수십 명 참석했다. 양국 관계가 좋다는 방증이고, 이런 흐름을 이어가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반면 사도광산 희생자 추도식은 올해도 반쪽으로 개최됐다.
“이 문제로 한·일 관계 개선 흐름이 꺾일까 봐 우려했다. 하지만 역사 문제로 현실적 관계를 해칠 정도까지 나아가지 않으려는 생각이 서로에게 있는 것 같다. 야마구치현 조세이 해저탄광 유해 발굴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검토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올 초에는 윤봉길 의사 순국지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에서 윤봉길 추모관 건립 문제로 일본 우익들 시위가 거세지 않았나. 하지만 현지 60주년 기념행사에 이시카와현 지사가 참석했고, 12월2일 윤봉길 의사 93주기 추념식도 현지의 협조 속에 잘 진행이 됐다. 한·일 간에 역사관이나 입장의 차이는 여전히 있지만 서로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의 폭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단이 추모관 건립에 반대하는 것은 지역사회가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한 용납하기 어렵다는 뜻이지, 윤봉길 의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민단으로서는 교포들 생활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역사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 모든 게 멈춰 버린다. 때로는 일본이 이해해줄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도 필요하다.”
―다카이치 총리가 시마네현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 행사에 정부 참석자 격을 높인다거나 내년 봄 제사 때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나온다.
“그게 제일 걱정이다. 시사주간지에 ‘다카이치 총리, 야스쿠니 연말 방문’이라는 제목이 달린 것도 봤다. 이 대통령이 ‘야당 시절과 대통령일 때는 다르다. 국정을 책임지고 국익을 우선시하는 입장에서는 일본은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다’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다카이치 역시 한 명의 정치인일 때와 일국의 총리가 됐을 때는 관점이 달라지지 않을까. 굳이 한국인 감정을 자극하는 일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
―‘재일교포 4, 5세까지 나온 상황에서 일본에 있는 한국인이라는 인식을 재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내가 교포 3세, 손자는 5세다. 찾아보면 6세, 7세도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자기 조상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민단이 한국에서 여는 ‘어린이 잼버리’에 다녀와서 ‘아빠, 내가 한국 사람인지 몰랐어’라고 한 아이도 있다더라. 여권을 보고 알았다는 사람도 있다. 일본 학교에 다니고 일본어를 쓰다 보면, 집안에서 따로 정체성 교육을 하지 않는 한 잘 모른다. 좋고 싫고를 떠나 자기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어린이 잼버리는 민족학교가 아닌 일본 학교에 다니는 초등생을 대상으로 민단이 벌이는 사업이다. 참가자 200명 중 태반은 부모 중 한쪽이 일본인이거나 해서 한국 국적이 아니다. 또래들과 함께 한국에서 지내면서 가족여행 때와는 또 다른 정체성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김 단장 생각이다. 원래 격년으로 하던 행사인데, 지난해 취임 후 김 단장은 임기 3년 동안 매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침 한류 열풍이 불어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워진 이 시기를 잘 살려서 교포 자녀들을 경계선 없이 글로벌 인재로 키워내겠다는 포부에서다.
―재일교포들은 서울올림픽 때 100억엔 성금을 모금했고 외환위기 때는 외화송금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모국에 대한 감정이 남다른 것 같다.
“우리, 특히 1세들은 자기 부모를 대하듯 모국을 바라본다. 여기서 번 돈 대부분을 한국에 송금했고, 학교도 지어줬다. 한국이 잘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서다. 태어난 곳이 한국이고, 거기에 뿌리가 있으니까. 그런 생각에는 정치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럼에도 모국으로부터 차별받는 일도 발생하는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재일 한국인을 창작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재단에선 ‘세금 등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에서이지 차별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개선해주시길 바란다. 그래야 동등한 예술 활동이 된다고 본다. 과거에는 병역 관련 법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자녀들이 한국어를 익히고 모국을 체험할 수 있도록 방학을 활용해 한국 친지들에게 맡겼더니, 7∼17세 사이 한국 체류 기간이 1년에 60일을 넘었다는 이유로 재외국민 2세 자격이 상실된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 유학이 어려워져 문의했더니 ‘차라리 귀화하면 편하다’는 답을 듣기도 했다. 문제 제기 후 ‘90일 이상’으로 규정이 바뀌었다.”
―내년은 민단 창단 80주년이 되는 해인데.
“교포 1세가 주축이던 때와 달리 지금은 한인사회 간 연결고리가 많이 약해졌다. 새해에는 지방 곳곳을 다니며 교류 활성화, 통합에 집중하려고 한다. 이는 동포사회 내 신구 세대의 벽을 허물어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비단 80주년이 아니더라도 해야 한다. 아울러 민단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책자가 아닌 영상으로 만들려고 한다. 차세대 교포들이나 외부인들도 이를 통해 민단을 더 잘 이해하고 소통하는 계기로 삼고 싶다.”
김이중 단장은…
●1959년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출생 ●간토가쿠인대 졸업 ●한국가나가와청년회의소 회장 ●민단 가나가와현본부 감찰위원장·단장 ●요코하마행은신용조합 이사 ●동경한국학교 이사
●민단 중앙본부 부단장·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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