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판결문에 마구니가 찼구나”… 법왜곡죄는 21세기 ‘관심법’ [장혜진의 법조 랩소디]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장혜진의 법조 랩소디 , 세계뉴스룸

입력 : 2025-12-06 18:00:00 수정 : 2025-12-07 00:16:43
장혜진 기자 janghj@segye.com

인쇄 메일 url 공유 - +

“네놈 머릿속에는 마구니(魔軍·악한 기운)가 가득 찼구나. 어서 저 놈을 때려죽여라!” 

 

사극 ‘태조 왕건’ 속 궁예는 상대의 마음을 읽는다는 관심법(觀心法)으로 사람을 단죄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연내 처리를 목표로 내건 법왜곡죄는 현대판 관심법이다. 증거로 입증할 수 없는 ‘내심의 의사’를 처벌하려 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김영철 배우가 궁예로 분한 모습. KBS 대하드라마 ‘태조왕건’ 캡처

민주당이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처리한 이 법안은 판검사가 ‘부당한 목적’을 갖고 법령을 ‘의도적’으로 잘못 적용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한다. ‘논리와 경험칙에 현저히 반하는 사실인정’도 처벌 대상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취소결정을 내린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겨냥한 표적 입법이란 평가를 받는다. 지 부장판사는 내년 2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민주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2일 “만약 지귀연이 1심에서 윤석열을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풀어주거나 무죄를 선고하면 (법 왜곡죄로) 처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같은 당 박균택 의원도 “지 판사의 왜곡 행위는 어떻게 처벌할 것이냐”면서 법왜곡죄 도입 필요성을 주장했다.

 

문제는 ‘부당한 목적’과 ‘의도적 왜곡’을 어떻게 판별할 것인지다. 형사재판의 대원칙은 ‘증거재판주의’다. 판결의 법리 해석이 고의적 왜곡이었는지 여부는 객관적 증거로 특정하기 어려운 머릿속 영역이다. “짐은 미륵이니 네 마음을 다 안다. 너는 반역을 꾀했다”는 궁예의 섬뜩한 어록은 이렇게 치환될지도 모른다. “너의 판결 논리는 틀렸다. 왜냐하면 너는 피고인을 봐주려는 ‘부당한 목적(마구니)’을 품었기 때문이다.” 

 

판사가 “나는 양심과 법리에 따라 판단했다”며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소용없다. 수사기관이 “너는 법을 몰라서 틀린 게 아니라, 나쁜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비틀었다”고 규정하는 순간 피의자가 된다. 고의 입증을 명목 삼아 판사의 과거 SNS, 지인 관계, 식사 자리 발언, 유튜브 시청 목록까지 털어댈 것이다. 수사 자체가 형벌이 된다.

 

이는 중세 유럽의 종교재판을 떠올리게 한다. 대법원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법 왜곡죄는 역사적으로 신권과 왕권 등을 수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고 반발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종교재판은 교황청이 정한 ‘단 하나의 진리’ 외에는 허용하지 않았다. 집권 세력이나 다수 여론이 원하는 정답이 정해져 있는데, 판사가 소신으로 오답을 내린다면? 그는 심판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이단심문관이 무서운 이유는 화형 그 자체보다, 그 존재만으로 지식인들을 침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먼 과거의 일만이 아니다. 유럽연합 사법재판소(CJEU)는 2021년 판결 내용을 징계 대상으로 삼으려 한 폴란드의 판사 징계 제도에 대해 “사법부에 대한 ‘정치적 통제’이자 판사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수단”이라며 사법 독립 침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공포만으로 판사들은 위축된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자신의 법철학이나 소신보다, 정치 권력과 여론이 바라는 방향을 먼저 계산하게 된다.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당사자들이 판사를 법왜곡죄로 고소하고, 수사기관은 이를 빌미로 판사를 압박하는 ‘고소 공화국’의 디스토피아가 펼쳐질 것이다. 결국 판사들은 대법원 판례 ‘복사-붙여넣기’, 전례 답습 같은 안전한 길만을 택하게 될 것이다. 

 

판사들이 종종 잘못된 법률 해석이나 사실인정을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 상급심에서 파기환송되는 사건들 거의 대부분은 하급심 판사의 잘못된 법률 적용이나 사실 오인이 문제가 된 탓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한 교정장치로 이미 상급심과 재심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문제를 일으킨 법관을 제재 및 처벌하기 위해 헌법상 법관 탄핵과 형법상 직권남용죄 처벌, 내부 징계와 연임심사 같은 제도도 두고 있다. 

 

판결을 기어이 형사처벌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가는 순간, 재판은 법치 아닌 종교재판으로 변질된다. 이때 가장 큰 피해자는 판사가 아니다. 권력의 눈치를 보는 판사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 힘없는 국민들이다. 법은 ‘단 하나의 진리’를 믿는 종교가 아니다. 시대에 따라, 판사의 법철학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저마다의 소수의견이 존재해야 사회는 앞으로 나아간다. 궁예의 관심법과 중세 종교재판은 역사 속에서 끝나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 법정에 ‘마구니’를 찾는 굿판을 벌여서는 안 된다.


오피니언

포토

아이브 가을 '상큼 발랄'
  • 아이브 가을 '상큼 발랄'
  • 원지안 '매력적인 손인사'
  • 신민아 '눈부신 미모'
  • 전도연 '아름다운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