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부실’ 판단 매각 가능케 해
수사받은 관료 배임죄 모두 무죄
시민단체 “매각 주도자들 재수사
국부 유출 처벌… 추징 등 나서야”
정치권은 서로 “내 업적” 공방전
“외환은행의 경영상태 파악과 잠재부실 규모를 예상하는 데 있어서 적절치 못한 측면이 있고, 그 수치가 론스타 측에 유리하게 할 의도로 조작됐다고 의심할 수 있다.”
2008년 11월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당시 재판장 이규진)는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의 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 혐의 사건을 선고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사건 핵심 쟁점이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전망치를 산정하는 데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과천=뉴스1
법원은 다만 “전체의 틀에서 엄격하게 봤을 때 배임 행위나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범죄 성립을 위해선 고의가 입증돼야 하는데, 외환은행이 최악의 상황을 맞을 것을 가정한 ‘정책적 판단’이었다는 피고인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판단은 2심을 거쳐 대법원에서도 유지됐다.
한국 정부가 4000억원 규모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 판정 취소를 받아냈지만, 론스타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금융관료들에 대한 책임론이 재점화하고 있다. 특히 론스타가 추가 법적 대응을 예고한 만큼 정책 결정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는 등 재발 방지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의 핵심 중 하나는 BIS 자기자본비율 조정이다. 이 수치가 산업자본인 론스타의 인수 자격을 가르는 결정적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은행법상 산업자본은 은행 대주주가 될 수 없으나 대상 은행이 부실 금융기관(BIS 비율 8% 미만)으로 분류될 경우 예외적으로 인수가 허용됐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2003년 6월 금융감독원은 외환은행의 BIS 비율을 9%대로 전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환은행 측이 연말 비율이 6.16%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5장의 팩스 자료를 제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금융당국은 결국 이 자료를 근거로 외환은행을 ‘잠재적 부실 금융기관’으로 인정했고, 같은 해 8월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을 인수할 수 있게 됐다.
시민단체들은 외환은행의 실제 BIS 비율이 저평가돼 헐값에 매각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론스타가 일본에 골프장과 예식장 등 산업자본 계열회사를 가졌음에도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결국 매각 결정에 관여한 경제관료들은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법원에서는 줄줄이 무죄 판단을 받아냈다. 그사이 론스타는 2010년 외환은행을 매각하며 4조6635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한국을 떴고, 한국 정부가 매각 승인을 지연해 더 많은 이익을 남기지 못했다며 ISDS도 제기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윤영대 대표는 “이번 승소(취소 결정)는 끝이 아니라 국부 유출 회수의 시작점”이라며 “론스타 사태의 본질을 경제 관료인 모피아가 김앤장 등과 결탁해 국유재산법과 은행법을 위반하고 국부를 유출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당시 매각을 주도한 책임자들에 대해 지금이라도 수사와 추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도 “멀쩡한 은행을 부실 기관으로 지정해 투기자본이 인수할 수 있도록 ‘원죄’를 만든 것은 당시 ‘모피아’들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론스타가 투자자에게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중재를 신청할 가능성이 크다”며 “(외국계 투기자본에 대해) 앞으론 징벌적 매각 명령 등을 적극적으로 내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론스타 배상 판정이 뒤집힌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업적 공방을 벌였다. 더불어민주당이 정부 차원의 대응을 높게 평가한 것과 달리, 국민의힘은 이전 정부의 성과라는 점을 강조하며 여권이 ‘생색내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이날 대구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대한민국이 승소했다는 기쁜 소식, 4000억원을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며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적인 성과와 더욱 빛나게 된 대한민국을 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치켜세웠다. 반면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날 배포한 논평에서 “민주당은 그동안 ‘승소 가능성이 없다’, ‘취소는 불가능하다’, ‘소송비만 늘어난다’며 지난 정부의 대응을 거세게 비난해 왔다”며 “그랬던 그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성과라고 포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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