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남정훈 기자] 한화 김경문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는 ‘뚝심’이다. 한 번 믿음을 준 선수는 끝까지 믿는다. 한국야구 역사상 최고의 쾌거로 남아있는 2008 베이징 올림픽 9전 전승 금메달을 따낼 때도 그랬다. 올림픽 기간 내내 최악의 타격 부진을 보이던 이승엽 전 두산 감독을 믿고 4번 타자로 기용했다. 결국 이 전 감독은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8회 결승 투런포를 쏘아 올리며 김 감독의 믿음에 화답했다.
그런 김 감독이 2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5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2차전(KS·7전4승제)에서 믿음의 야구를 잠깐 접고 변화를 줬다. 전날 열린 1차전에서 2-8로 패하자 김 감독은 플레이오프부터 쭉 1번 타자로 믿고 기용했던 손아섭을 6번으로 내리고 2년차 신예 황영묵에게 톱타자를 맡긴 것. 김 감독은 경기 전 “황영묵이 LG 선발 임찬규를 상대로 타율 0.333(9타수 3안타)로 강했다”라며 타순 변화를 설명했다.
타순 변경 효과는 1회부터 나왔다. 황영묵은 1회 첫 타석에서 중전 안타로 출루했고, 1사 뒤 문현빈의 투런포 때 홈을 밟았다. 노시환의 KS 역대 통산 11번째 백투백 홈런까지 터지며 한화는 3-0으로 달아났다. 올 시즌 잠실에서 한화를 상대로 3경기 등판해 평균자책점 0.78의 짠물피칭을 선보였던 임찬규는 경기 초반 연이은 홈런포 허용에 흔들렸다. 타순이 6번으로 내려온 손아섭도 좌익선상 2루타로 출루했고, 하주석의 중전 적시타로 4-0까지 점수차가 벌어졌다. 일찌감치 한화가 승기를 잡는 듯 했다.
그러나 한화의 리드는 채 2이닝을 가지 못했다. 이날 선발로 나선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이 물오른 LG 타선 앞에 처참하게 무너졌기 때문. 류현진은 2006년 10월29일 삼성과의 KS 6차전 이후 19년, 일수로는 6938일 만에 KS 마운드에 올랐다. 팀 타선이 1회부터 넉점을 뽑아주며 어깨를 가볍게 해줬지만, 19년이나 흘러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류현진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LG 킬러’가 아니었다. 직구는 최고구속이 146km에 머물렀고, 전매특허인 칼날 제구력도 무뎌진 모습이었다.
2회 연속 안타와 볼넷으로 무사 만루 위기에 몰린 류현진은 박동원에게 좌중간 2타점 2루타를 얻어맞았고, 곧바로 구본혁에게 2타점 우전 동점 적시타를 맞았다. 홍창기에게까지 우중간 적시타를 맞으면서 2회에만 곧바로 4-5 역전을 허용했다.
류현진이 이 정도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으면 3회부터 마운드를 교체해야 했지만, 김 감독은 이번엔 다시 믿음의 야구를 펼쳤다. 류현진을 3회에 마운드에 올렸지만, 류현진은 2사 1루에서 다시 만난 박동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볼카운트 3B-1S에서 던진 5구째 체인지업이 한 가운데로 몰렸고, 절정의 타격감을 보여주던 박동원이 이를 놓칠리 없었다. 호쾌하게 받쳐놓고 돌린 스윙에 라인드라이브 타구는 118m를 곧바로 날아가 좌측 담장을 넘어갔다. LG의 7-4 리드. 승기는 LG로 기울었다.
김 감독의 투수 교체 타이밍이 한 박자 느렸던 것과 달리 LG의 ‘염갈량’ 염경엽 감독은 한 박자 빠른 타이밍으로 위기를 조기에 진화했다. 선발 임찬규가 4회 볼넷 2개와 수비실책으로 인해 1사 만루에 몰리자 곧바로 필승조 김영우를 올렸다. 신인 김영우는 리베라토를 2루 뜬공으로 잡아냈지만, 문현빈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하며 흔들렸다. 그러자 염 감독은 김영우를 바로 마운드에서 내리고 팀 내 유이한 필승조인 김진성을 투입했다. 1986년생의 베테랑 우완 불펜 김진성은 2사 만루에서 한화 4번타자 노시환을 삼진으로 솎아내며 불을 껐다. 두 사령탑의 지략 싸움에서 염 감독의 완승으로 끝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김 감독의 ‘악수’는 계속 됐다. 류현진에 이어 4회 마운드에 올린 투수는 김종수. 5-7, 2점차 열세 상황이면 필승조를 올려야 했지만, 추격조 역할의 김종수를 올렸다. 결국 김종수는 2사 1,2루에서 마운드를 내려갔고, 부랴부랴 마운드에 오른 좌완 필승조 김범수는 볼넷 후 만루에서 문보경에게 우측 담장을 직격하는 싹쓸이 3타점 2루타를 맞았다. 10-5. 이 장면에서 사실상 이날 경기는 끝났다. 8회엔 문보경이 승부에 쐐기를 박는 투런포로 잠실벌을 가득 메운 LG팬들의 노란 응원 물결에 화답했다. 홈런포 포함 5타수 4안타 5타점의 맹타를 휘두른 문보경은 데일리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LG가 사령탑 지략 대결 완승과 이틀 연속 화끈하게 터진 방망이의 힘을 앞세워 한화를 13-5로 꺾고 잠실 홈에서 치러진 KS 1,2차전을 모두 쓸어 담았다. 전날 1차전 승리로 한국시리즈 우승 확률 73.2%(30/41)를 거머쥐었던 LG는 우승 확률을 90.5%로 올렸다. 한국시리즈에서 1,2차전을 모두 승리한 팀은 21차례 중 19번 KS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두 차례의 우승 실패 중 한 번이 김 감독이 두산을 이끌던 2007년으로, SK를 상대로 2승 뒤 4연패로 무너졌다. 김 감독은 잠실에서 치러진 KS에서 두산, NC 시절을 포함해 12전 전패라는 불명예를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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