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억 주택에 대출 잔액 4.8억원 경우
최대 3.2억 가능, 1.6억 먼저 갚아야
대출 총량 안 느는데 과도 규제 비판
당국선 “지적 알지만 정책 취지 맞아”
4년 전 서울의 한 아파트를 매수해 살고 있는 30대 A씨는 주택담보대출을 갈아타려다 최근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제동이 걸렸다. 시세가 8억원 정도인 이 집에는 주담대 잔액이 4억8000만원가량 남았는데, 대환대출에도 담보인정비율(LTV) 40%가 적용되면서 A씨가 최대로 받을 수 있는 주담대는 3억2000만원이다. 1억6000만원을 먼저 갚지 않으면 더 낮은 대출금리로 갈아탈 수 없게 된 것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수도권 규제지역의 주담대 갈아타기가 사실상 멈췄다. 정부는 부동산 수요 억제를 위한 불가피한 규제라고 설명하지만 서민의 금리 부담을 줄이겠다는 정부의 기조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은행의 비대면 대출 접수가 중단되고 전세퇴거자금대출 한도도 쪼그라들면서 시장의 혼선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22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수도권 규제지역에서 기존 대출을 더 낮은 금리의 대출로 갈아탈 때(대환대출)도 새 LTV 규제가 적용된다. 당국은 “대환대출은 신규대출로 분류된다”면서 “기존 대출을 중도상환하고 새로운 조건으로 갈아타는 구조여서 강화한 LTV 규정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규제지역(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으로 지정된 곳에선 축소된 LTV만큼 원금을 갚아야 대환대출이 가능하다.
이재명정부에서 대출 갈아타기가 막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부는 6·27 대책에서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 한도를 1억원으로 제한하고, 여기에 대환대출도 포함시켜 논란이 됐다. 이 여파로 지난 7월 주담대 갈아타기 규모는 2945억원에 그치며 전월(5908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9·7 대책에선 기존 주담대 차주들의 대환대출을 허용했는데 한 달 만에 다시 대환대출에 제동을 건 것이다.
시장에선 대환대출이 대출 총량을 늘리지 않고 저렴한 금리로 갈아타는 것일 뿐인데 정부가 이를 막는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특히 ‘서민 이자 부담 완화’라는 정부 기조와 달리 대출 규제가 오히려 서민과 실수요자의 부담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서민 이자부담 경감을 목표로 온라인·원스톱 대환대출을 2023년 5월 신용대출 갈아타기부터 시작해 2024년 1월 아파트 주택담보·전세대출로 범위를 넓혔고, 같은 해 9월엔 주거용 오피스텔·빌라까지 포함했다. 지난해 약 19만5000명이 이 서비스를 이용해 1인당 평균 185만원가량의 이자를 줄인 것으로 집계됐다.
대환대출이 새 LTV 규제를 받는 것을 두고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자부담에 대한 지적은 알고 있다”면서도 “지금까지 갈아타기 대출 시 은행별로 새롭게 담보가치를 적용해왔기 때문에 LTV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정책 취지에 맞다”고 설명했다.
10·15 대책 이후 대출 한도를 정하는 기준인 15억원 집값을 놓고도 혼선이 이어졌다. 정부 대책을 보면 주택가격은 대출 신청일 기준 KB부동산시세의 일반평균가나 한국부동산원 가격이 활용된다. 6억원까지 대출을 받기 위해 주택을 15억원 이하로 계약하더라도 KB시세 일반평균가가 15억원을 넘으면 한도는 4억원으로 준다. 반대로 15억원 이상으로 주택을 매매하더라도 시세가 15억원 이하라면 한도는 6억원이 돼 나와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일부 은행이 비대면 주담대 접수를 제한한 점도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대책 내용을 전산에 적용하기 위함인데 일부 시중은행이 대책 발표 이후 비대면 주담대 취급을 중단했다. 일부는 접수를 재개했지만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 등은 여전히 신규 신청을 받지 않고 있다.
이외에도 새로 규제지역에 포함된 지역에서 전세퇴거자금대출 LTV가 70%에서 40%로 대폭 축소되고 대출 한도는 1억원으로 제한돼 전세보증금 반환 자금 조달이 막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책 이후 추진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중도금 대출도 새 규제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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