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900개 규모·7만여개 점포
상인들 “손님 절반이나 줄어” 한숨
“무역분쟁보다 경기가 더 큰 문제
이우의 불황은 세계의 불황” 호소
이우시, 온라인 판매로 활로 모색
대부분 저품질 탓 바이어들 ‘외면’

세계 최대 소상품 도매시장인 중국 저장성 이우국제상무성(푸톈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세계일보 기자에게 한숨을 쉬며 상황을 전했다. 상인들은 “무역전쟁보다 경기가 문제”라며 하나같이 체감 경기 악화를 호소했다.
‘세계의 시장’이라 불리는 이우가 활기를 잃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인한 불확실성과 중국 내수 부진이 겹치면서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지난 18∼19일 찾은 푸톈시장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반짝이는 장식품과 인형, 양초 등이 진열돼 있었지만 매대를 오가는 바이어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중국 내에서도 소비가 둔화해 거래가 이뤄져도 납품 단가나 수량이 줄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푸톈시장은 1982년 문을 연 이래 전 세계 바이어가 찾는 중국 최대 소상품 시장이다. 1~5구역에 7만여개 점포가 입점해 있으며, 면적은 640만㎡로 축구장 약 900개 규모에 달한다. 이곳에서 거래되는 상품은 완구·생활용품·액세서리·문구 등 200만종이 넘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세계의 시장이지만 세계가 식어버렸다”는 말이 들려온다.
이상조 이우시 한국인회장은 “이우는 반도체나 자동차 같은 산업재가 아니라 생활소품 중심이라 세계 수요 위축의 영향을 정면으로 받는다”며 “미국과의 관세 갈등이 이어지고, 중국 내 소비도 살아나지 않아 이중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가 식은 데다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이 겹치니 미국과 무역을 중개하는 바이어들의 고민이 깊다”고 했다.
미국의 고율 관세 부활 조짐은 현장의 불안을 더 키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관세 인상 논의가 이어지자 바이어들은 주문 시점을 늦추거나 물량을 나눠 발주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분산시키고 있다. 일부 품목은 내수 전환을 시도했지만 중국 내 소비 위축 탓에 매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한 상인은 “이우의 불황은 결국 세계의 불황”이라며 “수요가 줄면 이곳이 제일 먼저 타격받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거래가 위축되자 이우는 온라인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14일 이우시는 ‘이우 글로벌 디지털무역센터’를 공식 개관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상인들이 라이브 방송을 통해 해외 바이어와 실시간 협상한다”며 “국경을 초월한 가상 매장 체험이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디지털무역센터가 아니라도 시장 안에서는 스마트폰을 들고 매장을 돌며 실시간으로 상품을 소개하는 상인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정했다. 질 좋은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다 보니 결국 직접 봐야 한다는 반응이 다수다. 현지 바이어들은 여전히 ‘손으로 만져보는 거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관련 용품을 둘러보러 온 한국 바이어 박모씨는 “디지털무역센터가 열렸다지만 아무래도 직접 와서 물건을 보는 게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다만 이우의 ‘속도’는 여전했다. 푸톈시장 내부로 들어서니 ‘라부부’ 인형을 팔며 QR코드가 새겨진 명함을 흔드는 상인이 바이어들에게 은밀히 접근했고, 올해 중순 공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짝퉁 인형이 이미 매대에 걸려 있었다. 인근 장난감 수입업자는 “콘텐츠가 뜨면 금형 뜨고 시제품을 만드는 데 한 달이면 충분하다”며 “라이선스보다 속도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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