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어제 황해도에서 동북쪽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여러 발을 발사했다고 우리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은 지난 5월 8일 이후 5개월여 만이고,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뒤로는 처음이다. 다음 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세계 각국 정상들이 속속 입국할 예정이다. 정부는 에이펙을 전후한 시기나 회의 기간 동안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직시하고 대북 경계 등 안보 대비 태세 확립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9일 방한해 1박 2일간 머물며 이재명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과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목표는 그런 트럼프와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한껏 부각하고 ‘몸값’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트럼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단둘이 만나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충분히 지불해야 한다는 엄포로 풀이된다. 그제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자민당 새 내각의 대북 강경론에 반발해 경고장을 날렸다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북한은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다량의 핵탄두 탑재와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형을 공개했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온 정상급 인사들이 김정은 양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봤다. 그동안 국력을 쏟아부어 기른 핵무기 역량과 북·중·러 3국의 군사적 밀착을 대내외에 과시한 셈이다. 북한으로선 한·미·일 3국에 모두 새 정부가 들어선 올해가 세 나라 간 균열을 조장할 적기라고 판단할 법도 하다. 한·미 동맹 강화와 한·미·일 안보 협력 지속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하겠다.
상황이 이처럼 엄중한데 대통령실의 현실 인식은 안이한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인데도, 국가안보실 주최로 열린 긴급 안보 상황 점검회의 후 나온 보도자료에는 이 내용이 빠졌다. 한국이 연말까지 안보리 이사국 임무를 수행 중이란 점을 고려하면 납득하기 힘든 처사다. “긴장 고조 행위를 중단하라”는 등 북한을 겨냥한 규탄 메시지 또한 찾아볼 수 없다. 현 정부가 바라는 남북 관계 개선도 튼튼한 안보의 뒷받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대통령실은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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