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지원 인원 400명→150명으로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가 중소기업의 공동안전관리자 채용을 지원하는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계는 정식 사업으로 전환해 정책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17일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정부예산안을 보면 내년 협·단체 공동안전관리자 지원 사업에는 39억원이 편성됐다. 이는 올해 예산(126억원) 대비 69% 감소한 규모다. 그 결과 목표 지원 인원은 올해 400명에서 150명으로 반 이상 줄었다. 대신 관리자당 지원액은 올해 250만원에서 내년 271만원으로 오른다.

지난해부터 시범사업으로 시행한 공동안전관리자 지원 사업은 중소기업이 안전관리자를 선임하기 어렵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 따르면 50인 이상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안전보건관리자를 선임하게 돼 있다. 중소기업에서 부담이라는 목소리가 크자 정부는 10개에서 최대 20개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안전관리자를 채용하면 정부가 이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예산 집행률은 저조하다. 지난해 공동안전관리자 채용 인원은 363명으로 목표(600명) 대비 60.5%에 그쳤고, 올해는 301명이 채용돼 이 역시 목표(400명)를 채우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해에 이어 계약을 연장한 협·단체가 있다는 걸 고려하면 여전히 부진한 셈이다. 노동부는 올해 집행률도 지난해와 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이 사업의 내년도 예산액을 줄이면서도 중소기업에서 안전관리자 수요가 늘어나게끔 정책 방향을 잡았다. 노동부는 산재 사망사고 비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내걸면서 안전보건관리자 선임 의무 사업장을 단계적으로 넓히겠다고 했다.

15일 ‘노동안전 종합대책’에도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노동부는 소규모사업장이 밀집한 지역산업단지에서 공동안전관리자를 채용토록 노·사 협·단체와 협업하겠다고 했다. 정책 목표와 예산 편성 간 괴리가 생기는 셈이다. 이 때문에 대책에서 해당 내용의 구체적인 예산 투입액이나 몇 개 산단에서 하겠다는 등의 정책 목표는 쏙 빠졌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사 협·단체와 의견 수렴을 해 목표를 구체화할 것”이라고 했다.
중소기업 현장에서 일하는 안전관리자들은 정부 예산이 줄어 고용 불안을 토로한다. 경북 지역의 제조업 협동조합 공동안전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A씨는 “우리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8명이 내년에도 다 같이 일하는 게 목표이고, 일단 조합에서도 내년에 1년 추가 계약을 하기로 했지만 다른 조합에서 일하는 관리자들은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에 있다가 은퇴 뒤에 공동안전관리자로 일하는 분들은 상대적으로 낫지만, 이제 막 이 분야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분들은 특히 걱정이 큰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그간 노동부의 사업 실적이 부진한 이유는 높아진 공동안전관리자 몸값 대비 지원액이 낮아서였다. 정부가 월 최대 250만원을 지원한다고 해도 인건비를 조금이라도 더 줄이고자 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나머지 비용조차 자부담하기를 꺼린다. 노동부가 내년 예산안에서 지원 금액을 271만원으로 상향한 이유다.
노동계는 내후년에라도 정식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현장 안착을 위해 정식 사업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사업이 안전관리자 선임 의무 확대 내용을 담은 산안법 개정과 함께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년도 예산에는 15일 발표된 대책이 반영되지 않아, 산업단지에서 공동안전관리자 채용이 제대로 진행될 가능성은 적다”며 “법 개정, 산단 채용 지원을 위한 산업통상자원부와의 협의 등이 이루어져 내후년부터라도 예산을 늘려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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