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 없이 소통 어려워… 식사·시설 모두 열악”
“강압적이던 美 요원들 시간 갈수록 태도 달라져”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풀려난 근로자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구금 당시 상황이 알려졌다. 일주일간 가슴을 졸인 가족과 동료들도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통역이 없어 소통이 어려웠고, 적법하게 체류 중이라는 해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처방 약이 제공되지 않는 등 상황이 열악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공장(HL-GA 배터리회사) 건설 현장에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등에게 붙잡혔던 330명이 전세기를 타고 12일 오후 입국했다.

입국자들은 체포 당시와 구금소에 있는 동안 통역은 없었고 상황을 알 길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하청업체 직원이라고 밝힌 김모(50)씨는 입국 전 날 귀국이 하루 늦춰진 것에 대해 “현지 구금소 직원이 영어로 ‘내일 나갈 수 있다’고 했고 주변에 영어를 잘하는 직원들이 상황을 알려줬다”면서 “그러더니 돌연 오후 10시30분쯤 한국에 못 가게 됐다고 전해 들었다”고 했다. 또 영어를 이해하지 못해 체포 영장인줄 모르고 서명한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30대 아들이 협력사 직원으로 출장에 갔다가 구금됐다고 밝힌 A씨는 “(귀국이) 하루 연기됐다고 했을 때 마음이 무너졌다. 왜 그러는지 연락도 되지 않고 답답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김모(45)씨는 “남편과 연락하기 위해 회사를 통해 영치금을 보냈지만 끝내 전화는 오지 않았다”며 “영문을 알 수 없으니 ‘미국이 다른 꼬투리를 잡아 안 보내려고 해 늦춰진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에 떨었다”고 했다.
체포 당시에는 ‘비자를 발급받았다’는 해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도 했다. LG에너지솔루션 소속 동료를 마중하러 왔다고 밝힌 한 중년 남성은 “무장한 인원 수십명이 한국인이면 다 데리고 가는 수준이었다고 했다”며 “배터리 공장이 넓은데도 샅샅이 뒤졌다”고 말했다. 김씨도 “체포 당시 ‘합법이다’, ‘비자를 받고 왔다’고 말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협력업체 소속 직원의 아내라고 밝힌 김모(35)씨는 “공장 외부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는 중 남편을 잡아갔다고 들었다”며 “건설이 마무리될 때까지 몇 차례 더 출장 갈 예정이었어서 전자여행허가(ESTA)가 아닌 비이민 단기상용(B1) 비자를 어렵게 발급받아 갔는데도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거냐”고 목소리 높였다.
구금소에서 처방 약조차 받을 수 없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구금자 중 최고령자였던 65세 전기 기술자의 아내 전모씨는 “남편이 늘 먹는 관절 약을 못 먹어 불편하다고 했다”며 “구금소 내에서 소화제 정도만 받았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날 입국 현장에선 한 근로자가 동료들과 악수하면서 “OO님이 고혈압약을 못 먹어 고생을 많이 했다”라고 말하는 모습도 보였다.

구금소의 좁은 방과 부족한 물 제공, 열악한 화장실 등 문제도 제기됐다. LG에너지솔루션 직원 조모(44)씨는 “2인 1실을 쓰는데 숙식하는 곳에 변기가 같이 있어 생리 현상 해결이 힘들었다”고 했고, 현대차 계열사 직원인 이모(49)씨도 “침대, 샤워시설 등이 너무 열악해 생활이 힘들었다”며 “매끼 식사를 다 하지 못할 정도로 음식이 엉망이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100명가량 한 방에서 지낼 때 2층 침대에서 다 잘 수 없어 일부는 바닥에 매트를 깔아야 했다”며 “물이 부족해 달라고 했으나 구금소 측에서는 ‘알겠다’고 하곤 요청을 무시했다”고 했다.
다만 초반에 강압적이던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의 태도가 점차 변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조씨는 “처음에는 되게 강압적이고 범죄자 취급하는 태도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런 식으로 대하면 안 되겠구나’ 싶었는지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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