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만 무료… “남성도 지원 필요”
자궁경부암은 예방이 가능한 암으로 잘 알려졌다. 자궁경부암을 유발하는 인체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이 존재해서다. 이 때문에 HPV 백신은 ‘자궁경부암 백신’으로 많이 불렸고, HPV 백신 접종은 여성 ‘쏠림’ 현상을 불러왔다.

그러나 HPV는 자궁경부암 외에도 구인두암·항문암·편도암과 생식기 사마귀 등 다양한 질환을 유발한다. HPV는 성접촉을 통해 전염되기 때문에 성생활을 하는 남녀 모두 감염될 수 있다. 실제 매년 전 세계 여성 약 57만명과 남성 약 6만명이 HPV가 원인인 암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3년 국내에서 HPV 감염이 주원인인 생식기 사마귀는 20~30대 남성에서 많이 나타났다. 남성환자의 경우 20대 1만4146명, 30대 1만9719명으로 20대 여성(5418명), 30대 여성(2324명)보다 4.4배 많았다. HPV에 의해 발생하는 구인두암도 증가 추세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의 2023년 발표에 따르면 HPV 감염으로 2019년 487명의 남성이 편도암 진단을 받았다. 2002년(187명)보다 2.6배 증가한 수치다. 해외 학술지 ‘랜싯 글로벌 헬스’는 15세 이상 남성 3명 중 1명이 HPV에 감염됐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국내 남성의 HPV 백신 접종률은 여성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게 현실이다. 지난해 질병관리청의 초·중학교 입학생 예방접종 확인사업 결과, HPV 접종 대상인 2011년생 여아의 HPV 백신 1차 접종 완료율은 79.2%였지만 같은 해에 태어난 남아의 접종 완료율은 0.2%에 불과했다.
이런 성별차는 백신 무료접종 대상과도 연결된다. 2016년 국가필수예방접종 사업(NIP)에 HPV 백신이 포함될 때부터 10년째 여성에만 한정 지원된 탓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첫 접종 나이 기준으로 12∼14세(2회), 15∼17세(3회) 여성에 HPV 백신 비용을 지원한다. 남성에도 HPV 백신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호주, 영국, 미국 등 33개국은 남녀 모두에 HPV 백신 접종을 지원하고 있다. 호주의 HPV 백신 접종률(2020년 기준)은 남성 77.6%, 여성 80.5%에 달한다. 영국 역시 남아 56.1%, 여아 62.9%를 달성했다. 전 세계 접종률이 13%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김동현 인하대병원 소아감염분과 교수는 “HPV는 주로 성접촉에 의해 전파되며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다양한 암과 질환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남녀 모두 백신을 접종해야 집단면역의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국내에서도 해외처럼 남녀 모두 국가예방접종대상에 포함해 HPV 예방 사각지대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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