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국익과 정면 배치”…불참 촉구
전문가들 “시진핑이 한국 먼저 올 차례”

중국이 오는 9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대회’, 이른바 전승절(戰勝節)에 한국의 참석 의사를 타진해 오면서 ‘실용 외교’를 강조해 온 이재명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 들어 격화된 미중 갈등 속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야권을 중심으로 전승절 방중(訪中)은 국익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전승절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한 판단이라고 한목소리로 제언했다.
中, 李대통령 ‘전승절’ 초청에…국힘, 불참 촉구
3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최근 우리 정부에 오는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전승절에 이 대통령의 참석 가능성을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통령실은 “한중 간 관련 사안에 대해 소통 중”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중국은 일본이 항복 문서에 서명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9월 2일의 이튿날인 9월 3일을 전승절로 기념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80주년을 맞아 서방 국가 정상들도 초청해 군사력을 과시하는 열병식 등 성대한 행사를 치를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이 대한민국 국익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불참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한동훈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적어도 지금은 중국 전승절 불참이 국익에 맞다”며 “대다수의 서방 주요국 정상들이 불참하는 중국 전승절 행사에 한국의 새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낸다면 우리 파트너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고 지적했다.
나경원 의원도 “튼튼한 한미동맹 구축이 먼저”라며 “미중 패권경쟁 시대인데 중국 전승절 초청을 실용외교로 포장한 언어로 가볍게 생각한다면 큰 외교에 있어서 패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상현 의원은 “격화되는 미중 갈등 속에서 흔들린 한미 신뢰를 공고히 하고 그 위에서 트럼프발 관세, 주한미군, 핵우산, 반도체 등 국익과 직결된 외교 현안부터 차근차근 풀어가야 할 때”라며 “한중 관계의 관리는 굳건한 한미동맹과 한미일 3각 협력의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주진우 의원도 “중국 전승절 참석은 국제 사회의 고립을 자초하는 일”이라며 “이념보다 철저히 국익”이 우선이라고 촉구했다.

“李, 시진핑 방한 뒤 中 가야…외교문제 비화 가능성↓”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이 전승절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미국에 중국을 우선시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역대 한국 대통령 중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5년 중국의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참석한 바 있다. 미국은 이 행보를 한국이 중국으로 기울고 있다고 보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특히 아직 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간 한미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을 먼저 찾는 건 이 대통령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한미정상회담 일정을 조율할 예정이던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의 방한도 무산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회담이 9월 유엔 총회나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로 미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 대면 전 중국 전승절 참석 여부부터 결정해야 할 숙제를 안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전문가는 세계일보에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친중’ 이미지가 강하다는 지적을 받아왔고, 미국도 이 대통령 당선 축하 메시지에서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을 우려하는 내용을 넣지 않았느냐”면서 “지금은 굳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타이밍이 아닐뿐더러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뒤에 방중을 고려해도 충분하다”고 조언했다.
이 대통령이 10월 경주 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먼저 제안했기 때문에 전승절 참석이라는 무리수까지 둘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시 주석은 2015년 박 전 대통령의 방중에 호응하는 답방을 10년 동안 미뤄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그 틀을 깨고 2017년 12월 3박 4일간 중국을 국빈 방문했으나 ‘혼밥’ 홀대 논란이 빚어졌다.
조성렬 경남대 초빙교수(군사학과)는 “한국과 중국 간 양자 관계에서 보면 시진핑 주석이 방한할 차례인 만큼, 시 주석이 한국에 온 뒤에 이 대통령이 중국에 가는 것이 맞다”며 “정부는 일단 전승절 참석을 고민하는 형태는 취하지만 실제로 방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전승절 참석을 거절하면 중국이 보복성으로 APEC 정상회의에 불참하는 등 한중관계가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중국 측이 이번 초청을 정부 간 공식 루트가 아닌 대사관 등을 통한 우회적 경로로 전달한 점 등을 들어 불참이 양국 간 외교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은 작다고 내다봤다.
또 과거 항일전 승리를 기리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전승절 참석은 한일 간 ‘셔틀외교’ 복원을 제안한 이 대통령 입장에선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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