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는 동지 아니라 기술자 발탁”
‘몽돌’ 盧, 안정형 총리 고건 기용
강 건넜으면 뗏목 버릴 수 있어야
이르면 오늘 밤 대한민국을 이끌 새 지도자가 선출된다. 당선인은 내일 취임식을 갖고 헌법 준수와 국가 보위,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 자유·복리 증진을 다짐하는 취임 선서를 한다. 전임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활동 없이 곧바로 집무를 시작하게 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파면 결정 과정에 드러난 국론 분열은 대선 운동 기간 내내 거친 파열음을 냈다. 누가 21대 대통령으로 뽑히든 갈라지고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지 않고 국정 동력을 만들기 어렵다.
새 대통령의 첫 인사(人事)는 새 정부 방향을 가늠하는 잣대다. ‘진짜 대한민국’ ‘새로운 대한민국’ ‘새로운 대통령’과 같은 각 후보의 슬로건은 구호일 뿐이다. 첫 인사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정부’의 색깔이 드러날 것이다. 이번처럼 조기 대선이 치러진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다음날 취임식을 치르자마자 청와대에서 직접 첫 인사를 발표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와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첫 인사에서 드러났듯 문재인정부는 호남 여론을 의식했고 대북 유화 정책을 폈으며, 청와대 주도로 ‘적폐청산’에 나섰다.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물론 반전을 노리는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이미 첫 인사 대상, 규모를 정해놓았을 것이다. 이 후보는 “유능하고 충직한 사람을 쓰겠다”고 했는데 능력, 충성도는 상대적 기준에 불과하다. 대선 후로 미룬 미국과의 관세 협상과 국내 경제 침체 상황, 극단적 진영 대결로 치러진 대선을 감안하면 ‘경제’ ‘통합’이라는 키워드가 필요하다. 김대중(DJ) 모델을 꼽을 만하다. 외환위기 국면에 정권을 넘겨받은 DJ는 진영 구분 없이 경제 해결사를 찾았고, 노태우정부 인사를 초대 비서실장에 기용했다.
“DJ는 나를 동지가 아니라 기술자로 발탁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았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자서전(‘위기를 쏘다’)에 쓴 글이다. 이 전 부총리는 1997년 대선에서 DJ 상대 후보 캠프에서 일한 전력이 있었지만 불문에 부쳐졌다. DJ는 회고록에서 “경제 전쟁의 장수들은 거의 김종필 총리와 자민련이 추천한 인사들이었지만 나는 그들의 국정 경험을 신뢰했고 그들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썼다. 가장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장에는 TK(대구·경북) 출신 김중권 전 의원을 앉혔다. 단순히 통합의 상징에 그치지 않고 그의 조언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받아들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몽돌과 받침대’론도 자주 회자된다. 노 전 대통령은 개혁 대통령(몽돌)에게 안정적 총리(받침대)가 필요하다며 초대 총리로 고건 전 총리를 불렀다. 운동권 출신 청와대 참모들은 보수 성향의 고 전 총리를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큰 혼란 없이 넘길 수 있었던 데는 고 전 총리 역할이 컸던 게 사실이다.
‘인사가 만사’라면서도 유능한 인물을 널리 구하지 못하는 까닭은 선거 공신들 때문이다. 공신들 자리다툼을 없애기 위해 아예 대선 캠프를 차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정치인도 있다. 한자리를 얻기 위해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인사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내치지 못하는 리더십이 문제다. 그렇게 가까운 이들로 대통령실, 내각을 채워 섬처럼 고립된 정권이 어디 한둘인가.
사벌등안(捨筏登岸), 득어망전(得魚忘筌)이라는 말이 있다. 강을 건너면 타고 온 뗏목을 버려야 언덕을 오를 수 있고, 고기를 얻었다면 통발은 잊어야 한다. 당초 대선 후보 명단에도 없던 김 후보에 비해 지난 대선 이후 줄곧 0순위였던 이 후보 뗏목은 사람들로 차고 넘친다. 성남·경기라인, 원조 친명(친이재명), 신명(신이재명), 외곽 정책자문조직, 선거용 위촉장 받은 이들까지 부지기수다. 강 건널 때 필요한 사람과 산을 오르는 데 도움이 되는 이는 다르다.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울지는 전적으로 지도자에 달렸다.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돌아서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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