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정보 담보로 청년에 소액대출… 연체되면 디지털낙인 악몽이 시작된다
“여기 여러분의 개인정보를 팔아먹은 파렴치범이 있습니다. 고소해서 합의금 받으세요.”

13일 인스타그램 검색창에 ‘개인정보 유출 사채’를 검색하자, 수십명의 얼굴 사진이 올라왔다. 인터넷에서 사건 당사자나 특정인에게 망신을 주는 디지털 낙인, 이른바 ‘박제’다. 이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불법사금융 피해자로 보이는 이들과, 이들의 가족 및 지인들의 실명, 전화번호 등이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불법사채업자가 운영하는 계정이다. 사채업자는 적반하장 격으로 피해자들이 개인정보를 유출한 이들이라면서 조롱하고 있었다.
최근 불법사금융은 개인정보를 담보로 잡는 독특한 형태로 진화했다. 물적 담보나 보증 대신, 가족과 친구들 개인정보를 받아내는 식이다. 이런 개인정보 대출은 사실상 ‘누군가의 인생’을 담보로 한 대출이다. 즉시 대출이 실행되지만 살인적인 이자가 붙고, 상환이 지체되면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온갖 협박이 가해진다. 이날 서울 동대문경찰서가 검거했다고 밝힌 불법대부업체 일당 35명은 2022년 10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제도권 은행을 통해 대출을 받기 어려운 저신용 청년 등에게 30만원을 대출해주고 일주일 후 50만원을 변제하도록 하는 이른바 ‘3050 대출’을 제공했다. 이들은 돈을 빌려줄 때는 담보나 보증인 없이 채무자의 나체사진과 지인들의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받았다. 그리고 연체가 시작되는 시점에 나체사진으로 성매매 홍보 전단지를 만들어 SNS를 통해 지인들에게 뿌렸다. 이렇게 온라인상에서 사실상 ‘인격 사망 선고’를 받은 채무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이들이 요구하는 최고 연이율 3000%의 이자를 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이 불법대부업체는 피해자 179명으로부터 약 8억1000만원을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2021년 351명이던 채권추심법 위반 피의자는 지난해 701명으로 2배로 불어났다. 이 중 구속기소된 피의자는 6명으로 0.8%에 그친다. 4년간 대부업법 위반으로 실형을 받은 피의자도 9.1%뿐이다. 10명 중 9명은 솜방망이 처벌만 받고 나오다 보니 다시 불법사금융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피해자들이 불법사금융을 접하는 통로인 불법 온라인 광고가 매년 증가하지만 금융당국은 뒷북 대응하기 일쑤다. 금융감독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차단을 의뢰한 불법 금융 투자 및 불법사금융 정보 중 81%는 각하 처리됐다. 차단이나 삭제를 해도 보호할 실익이 없어졌다는 이유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명예교수는 “불법사금융이 성행할 수 있는 것은 붙잡혀 처벌받더라도 들어가는 범죄 비용보다 불법사금융을 하면서 얻는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라며 “불법사금융을 저질렀을 경우 빠른 수사와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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