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먹는 하마’ AI 빠른 확산에
탄소 배출 없는 원전 건설 늘어
韓도 국가 에너지 주권 강화해야
2024년 3월 21일에 원자력에너지 정상회의 (Nuclear Energy Summit 2024)가 처음으로 벨기에 브뤼셀 엑스포에서 개최되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벨기에가 공동으로 이 행사를 개최했다. 당시 필자는 대한민국 수석대표로 참석하여 정부의 원자력 정책과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대한민국의 구상에 대해 연설을 했다. 유럽연합의 여러 나라를 포함하여 38개국이 참석하여 원자력의 역할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화석 발전에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원자력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국가 간 협력 제고를 강조했다. 특히 2023년 12월 개최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원자력을 청정에너지 전환의 필수 요소로 인정하고,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 용량을 3배 확대하겠다는 선언의 연장선에서 원자력 확대 이행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처럼 원자력은 탄소중립의 핵심 에너지원으로 재도약하고 있다. 과거 탈원전을 외치던 유럽 국가들은 이제 소형 모듈형 원전(SMR)을 포함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검토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럽은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활성화된 지역이지만 원자력 발전 비중을 늘리겠다는 것은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독일은 2000년부터 2023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중을 줄이다가 원전 제로 상태를 만들었지만 제조업 강국 독일의 경쟁력 저하를 가져왔다. 높은 에너지 가격으로 생산비용이 증가했고, 운송 및 물류비용 부담으로 경제 전체에 부담이 가중되었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발전에도 걸림돌이 되기 시작했다. 결국, 2025년 들어 탈원전을 재검토하고 화력발전소 50기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AI 패권국인 미국은 2050년까지 원전 발전용량을 현재의 3배 수준으로 늘리는 로드맵을 발표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취임일에 신규 원전 건설과 신속한 SMR 개발을 언급했다.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AI가 산업, 공공, 일상 및 첨단기술에 확산되기 시작함에 따라 전기에너지 확보가 국운에 큰 영향을 주게 됐다. 필자는 종종 국가안보에 중요한 것이 식량, 식수, 전기에너지 주권확보라는 말을 많이 했다. AI 시대에 전기에너지 확보가 그만큼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AI는 왜 전기를 많이 쓸까? AI 서비스는 먼저 학습 과정과 학습된 결과를 이용한 추론과정을 필요로한다. 학습이나 추론과정 동안 계산기(반도체 기술로 구현된 GPU 등의 칩)에서 엄청난 병렬연산이 수행되고, 이 과정에서 계산기와 HBM(고대역폭 메모리로 다수의 DRAM 칩을 쌓아서 구현) 사이에 많은 데이터 이동(저장과 읽기)이 수반된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전기에너지가 소모되고 심한 발열이 동반된다. 이런 이유로 AI 서비스 클라우드(서버)는 일반검색 클라우드(서버) 대비 약 10배 더 많은 전기에너지를 소모한다. 가트너에 따르면 AI 시장은 연평균 29%씩 폭발적 성장이 예상된다. 그에 따라 전기에너지 수요도 증가한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수요를 동시에 맞출 수 있는 과학적 선택은 원자력이다. 특히 안전성, 입지 유연성, 공기 단축, 운전 융통성 등의 장점이 있는 SMR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SMR 중에 액체 소듐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소듐냉각고속로(SFR)는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할 수 있는 파이로프로세싱을 지원하는 기술이고, 사용후핵연료의 처분량과 독성도 줄일 수 있다. 이에 우리나라는 SFR을 좀 더 집중해서 개발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는 빌 게이츠에 의해 설립된 테라파워사가 SFR 첫 호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중국은 2026년 세계 최초로 SMR 상업운전을 앞두고 있다. 우리는 탈원전 실패의 교훈을 잊지 말고 원전을 통해 국가 에너지 주권을 강화하고 수출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제 세계 시민은 AI 시대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탄소배출이 없는 지속가능한 전기에너지를 원전을 통해 확보해야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많은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전기에너지 주권 확보가 국가경쟁력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시대가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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