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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 찾아 희생자 추모·경험 공유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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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31 15:00:00 수정 : 2021-07-31 15: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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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방재관광’ 통해 경각심 고취

미야기현 유리아게 주민 750여명 희생
쓰나미부흥기원관 연 1만5000명 방문
당시 상황 알리는 자료 등 전시·영상 방영
유족들 가이드 역할… 재해 대처 요령 교육
주민 192명 희생 아라하마엔 9m 위령탑

쓰나미에 휩쓸려 무너진 건물 일부 보존
대피했던 초등교 긴박했던 상황 보여줘
새 피난시설 쓰나미 재발 가능성 경고
영농 재개·공장 재건 등 부흥의 소리 커져
재해전문가 “경제활동 보여주는 것 중요”
일본 센다이시 와카바야시구 아라하마지구의 위령탑인 아라하마자성관음에 고교생들이 참배하고 있다. 센다이=김청중 특파원

“내 소중한 아들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아들 이름을 쓰다듬다 보면 어느새 차가운 돌이 따뜻해집니다. 아들이 여전히 저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단노 유코(丹野裕子) 유리아게중학교유족회 대표가 지난 2일 위령비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검은색 석비에는 2011년 3월11일 동일본대지진 당시 높이 9m 쓰나미에 희생된 유리아게중학교 학생 14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단노 고타(丹野公太). 13세 어린 모습에서 더는 자라지 않는 아들 이름 네자도 그중에 있다.

미야기(宮城)현 나토리(名取)시 유리아게지구는 대지진 당시 주민 5700명 중 750명 이상 희생되는 괴멸적 피해를 받았다. 대지진 후 마을을 떠났던 단노씨는 3년 후 돌아와 마트 직원으로 생업에 종사하면서 위령비 보존과 위령비의 사무소 역할을 하는 ‘유리아게의기억’ 활동에 투신하고 있다. “내가 이곳에 돌아오지 않으면 아들의 혼이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을 것”이라는 단노씨는 지금도 끼니때에는 아들의 식사를 정성껏 준비하고 매주 아들이 좋아하던 만화잡지가 나오면 아들 방에 넣어놓는다고 했다.

단노 유코 유리아게중학교유족회 대표가 쓰나미에 희생된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위령비 옆에서 재해의 참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나토리=김청중 특파원

쓰나미부흥기원자료관인 유리아게의기억은 연간 1만5000명의 시민이 방문해 재해의 상처를 보듬는 장소다. 당시 상황을 알리는 자료와 유품 전시, 영상자료 방영을 하고 있다. 단노씨는 이곳에서 재해 당시의 경험을 전하는 가이드 역할도 한다. 방문자들에게 참척(慘慽)의 고통을 전하는 것을 넘어 당시 경험을 전파함으로써 재해 발생 시 희생을 최소화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일본 미야기현 나토리시 유리아게지구의 아이자와 후토시 전무가 동일본대지진 후 고향에 복귀해 주력하고 있는 시라스(멸치 치어) 어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나토리=김청중 특파원

그는 “지진이 일어난 직후 가벼운 마음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얼마 되지 않아 푸른 바다가 검은 바다로 변해 쓰나미가 덮쳤다”며 “사요나라(안녕)라는 말도 못하고 그렇게 다들 헤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도 그랬지만 대부분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며 “역사는 반복되며 다시 대지진과 쓰나미가 반드시 발생한다는 마음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센다이(仙臺), 나토리 등 동일본대지진 때 막대한 인명피해를 본 지역에서는 인프라 복구가 완료 단계에 접어들면서 당시 경험의 전파와 계승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재해 지역을 방문해 희생을 어루만지며 피해 최소화와 관련한 경험과 지식을 배우는 방재(防災)관광이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센다이 3·11메모리얼교류관, 센다이시 와카바야시(若林)구 아라하마(荒濱)지구의 위령비와 아라하마초등학교 유적지, 유리아게의기억, 나토리지진부흥전승관, 미야기동일본대지진쓰나미전승관이 그런 곳이다.

800세대 2200명이 거주하던 아라하마지구는 쓰나미로 2∼95세의 주민 192명이 희생됐다. 현재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재해위험지구로 지정돼 원주민은 내륙지로 집단 이주했다.

이곳도 방재관광 코스가 됐다. 이 지역을 덮친 쓰나미 높이를 상징하는 9m 위령탑인 아라하마자성관음(慈聖觀音)이 피해 지역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다. 지난 1일 방문했을 때도 센다이 시내 남녀 고교생들이 참배하고 방재시설을 둘러보고 있었다.

동일본대지진 때 쓰나미가 몰려왔던 센다이시 와카바야시구 아라하마초등학교는 방재 교육을 위해 교사를 보존하고 있다. 학생 91명을 포함해 교직원, 주민 등 320명이 구사일생으로 피난했던 이곳은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보여준다. 센다이=김청중 특파원

쓰나미에 휩쓸려 무너진 건물터를 일부 남겨놨다. 아라하마초등학교는 학생 91명을 포함해 교직원, 주민 등 320명이 구사일생으로 피난했던 곳으로 긴박했던 상황을 보여준다. 피난 언덕, 피난 빌딩, 피난 계단 등 새롭게 조성된 피난 시설은 언제든지 다시 쓰나미가 내습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방재관광의 특징 중 하나가 재해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새롭게 시작하거나 재개한 기업과의 연계다. 미야기현 남부 와타리(亘理)군 야마모토(山元)정의 농업생산법인 GRA가 이런 경우다. 야마모토정은 재해 당시 지역 면적의 4분의 1이 쓰나미로 침수해 사망 638명, 가옥 전파(全破) 2217동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봤다. 지역의 주력 생산품이었던 딸기를 생산하던 130여 농가도 95%가 타격을 받았다. GRA는 지역 경제를 되살려 달라는 지역 주민 희망에 따라 2012년 창립돼 농업과 정보기술(IT)을 접목한 딸기 영농을 통해 지역 부흥을 알리고 있다.

일본 미야기현 와타리군 야마모토정의 농업생산법인인 GRA 하시모토 요헤이 부사장(왼쪽)이 딸기 비닐하우스에서 직원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와타리=김청중 특파원

나토리시 유리아게지구의 마루타(Malta)수산도 원래는 피조개 소금절임으로 유명한 식품가공회사였으나 대지진 때 공장이 완전히 파괴됐다. 아이자와 노부유키(相澤信行) 사장과 후토시(太) 전무 부자는 시즈오카(靜岡)현에서 시라스(멸치 치어) 잡이를 돕다가 아버지가 먼저 2012년 가설 주택으로 돌아와 사업을 재개했으며 2016년에는 신공장이 완성된 뒤 아들이 복귀해 본격적인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시라스 어획 한계선이 북상하면서 지금은 시라스 명가로 거듭났다. 지난해에는 시라스를 사용하는 요리를 제공하는 카페를 열어 지역민과 관광객에게 지역 부흥을 알리는 사랑방 역할도 한다.

시바야마 아키히로 도호쿠대 재해과학국제연구소 교수가 2011년 3월11일 동일본대지진 발생 다음날 발행된 지역 신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헤드라인에는 ‘미야기 진도7 대쓰나미’라고 쓰여 있다. 센다이=김청중 특파원

시바야마 아키히로(柴山明寬) 도호쿠(東北)대 재해과학국제연구소 교수는 “재해 지역은 고령화가 더욱 가속화해 산업을 지키는 것이 어려워진다”며 “(부흥 과정을 통해 피해 지역에) 새로운 산업이 태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재해에 대해 배우고 부흥의 과정을 알아가는 것이 방재관광의 하나”라고 말했다.


센다이·나토리=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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