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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마케도니아의 이름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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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25 21:09:56 수정 : 2018-06-25 17:3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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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 사이에 명멸했던 오대십국 시대의 용장 왕언장(王彦章)에게서 비롯된 속담이다. 그런데, 이름은 사람만 남기나. 국가도 남긴다. 천하를 호령한 대제국이라면 그 이름값은 사람에 못지않다. 그리스, 이탈리아, 이집트를 보라. 옛 이름값에 힘입어 관광객들을 빨아들인다. 이름값만으로도 너끈히 먹고사는 것이다.

국가 이름값은 관광산업에서만 빛나는 게 아니다. 소유권 다툼에도 요긴하게 활용된다. 2007년 미국 탐험대가 공해에서 옛 스페인 선박을 인양했다. 엄청난 규모의 금은보화가 실린 ‘보물선’이었다. 스페인 정부는 즉각 자국 ‘문화유산’이라며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페루도 분쟁에 끼어들었다. 잉카제국에서 나온 보물일 개연성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때론 국가 이름 자체가 쟁탈 대상이 된다. 이름 연고권을 확보하면 영토를 비롯한 각종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고약한 분쟁 유형이다. 우리 고대사에 입맛을 다시는 중국의 동북공정도 같은 맥락이다. 동북공정이 억지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답이 이렇듯 명확하지 않은 사례도 허다하다.

마케도니아 국회의사당 앞이 지난 주말 소란스러웠다고 한다. 그리스·마케도니아 양국 정부 간 진행 중인 국명 개정 협상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매국노’ 구호를 외치며 정부 퇴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어수선하다. 양국 정부는 국명을 둘러싼 20년 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마케도니아 국명을 ‘북마케도니아’로 바꾸는 합의문에 공식 서명했다. 그러나 양쪽 모두에서 반발이 거세 후속절차가 순탄치 않다. 국가 이름이 분쟁 대상이 된 전형적 사례다.

마케도니아에선 왜 ‘북’을 붙이느냐고, 그리스에선 왜 ‘마케도니아’를 계속 쓰게 하느냐고 각각 반발한다. 값진 이름을 넘겨줄 수 없다는 옹고집이 충돌하는 것이다. 이런 분쟁엔 답이 없다. 알렉산더 대왕이 되살아나도 한숨만 내쉴 것이다. 강 건너 불일까. 대한민국도 경각심을 높일 일이다. 동북공정에서 보듯, 동북아 또한 이런 불길이 언제라도 크게 번질 수 있는 위험지역이니까.

이승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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