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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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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24 00:07:06 수정 : 2018-02-24 00: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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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예술 수명은 짧아지고 / 인간은 점점 더 오래사는 시대 / 변화를 무작정 추종하는 삶보다 / 관찰하고 성찰하는 삶이 유용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말이다. 여기서 그리스어 ‘테크네(techne)’를 번역한 예술이라는 말은 문맥상 의술을 가리킨다. 의사였던 히포크라테스에게 의술의 영역은 광활하며 그 완성의 길은 멀고도 힘든 것이다. 아니 완성 없이 열려 있는 길이다. 반면 인간의 수명은 제한적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의술의 길은 그리 멀지 않고 인생은 좀 더 길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이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반어법적 표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기회는 달아나기 쉽고, 실험은 부정확하며, 판단은 어렵다.” 기회는 달아나지 않고, 실험은 정확하며, 판단이 쉽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현실에서 이런 어려움은 의술뿐 아니라 모든 기예(技藝)에 해당된다. 고대에 테크네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가 기술이라고 부르는 것과 예술이라고 여기는 것을 모두 포함했다. 서구 역사에서 기술과 예술의 개념은 서로 섞임과 헤어짐을 지속해오다 18세기 중엽 미술(fine arts)의 개념이 정립되면서 각자 전문적이고 나름 분명한 영역을 차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경계선은 다시금 흐려지면서 온갖 기예가 융합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도 이런 개념 변화의 역사 속에서 오해되기도 했다. 그 말이 처음 사용됐던 맥락과 동떨어진 ‘명언’이 되면서 예술 작품의 영원성을 의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기술의 영역에서든 예술의 세계에서든 기예가 융합된 분야에서든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짧음’과 ‘가벼움’이다.

특히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대중예술에서는 가벼움과 짧음을 즐긴다. 새로움과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앞세운 시대에는 예술적 성향과 가치도 변한다. 작품 활동이 양적으로 증폭한 상황에서는 수많은 예술 작품이 태어나고 사라진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수명이 짧아진 기술과 예술의 현실은 우리 손 안에서 매일 같이 경험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현대 디자인 예술과 디지털 기술의 융합적 산물이다. 이 요술 상자를 통해 우리는 현대 기예의 다양한 차원을 즐기고 있다. 디지털 게임은 놀이를 전자기술화한 기예 활동이다. 그 안에서 다양한 뉴미디어와 이야기 콘텐츠가 결합한다.

그런데 이런 세상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의 차원에서든 소프트웨어의 차원에서든 업그레이드와 업데이트는 기본이고 일상의 일이다. 이는 모든 것이 단명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기술도 예술도 그 수명이 짧은 시대에 살고 있다. 다만 인간만이 점점 더 장수하고 있다.

그야말로 우리는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라는 말에 걸맞은 시대를 살고 있다. 고대의 명언을 뒤집은 이 말이 현재 우리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는 키워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늘어난 기대 수명을 실감하는 세대들에게 문화적 변동을 추종해야 하는 삶은 때론 매우 당혹스럽기 때문이다.

김용석 철학자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현명한 태도는 어떤 것일까. 바로 이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삶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겠지만, 우선 기본이 될 수 있는 이런 생활의 팁은 어떨까. 무엇보다 변화를 추종하는 삶보다 변화를 차분히 관찰하고 성찰하는 관조의 삶이 의미 있고 재미있을 것 같다.

모든 디지털 기예가 단명한 시대에 얼리어답터는 역설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 굳이 표현하자면 ‘스킵 유저(skip user)’라고나 할까. 곧 ‘월반하는 사용자’가 되는 것이 문화를 느긋하게 즐기는 방법일 수 있다. 내가 아는 사진 애호가는 디지털 카메라를 하나 갖고 있지 않으면 문화적 낙오자이던 때를 그냥 흘려보냈더니 스마트폰 카메라로 실컷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돼 좋다고 한다. 디카의 짧은 시대를 월반한 것이다. 엄지 족 시대를 월반하면 음성인식과 뇌파인식이 일반화한 시대로 바로 간다.

변화를 관조하고 월반하며 선택하는 태도는 문화 산물이 단명한 시대에 유용한 삶의 전략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피로 사회’가 일상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용석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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