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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장애인권리협약에 ‘탈시설’ 없다? [FACT IN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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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6-21 06:00:00 수정 : 2024-06-21 07: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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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사실
‘탈시설’ 논쟁 거세자 서울시의회서 표현 유례 두고 갑론을박
탈시설 용어는 없지만, 의미 담은 조항은 있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탈시설’이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까?”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명확하게 탈시설이란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열린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유만희 복지위 부위원장과 정상훈 서울시청 복지정책실장의 문답이다.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탈시설 조례)’ 폐지조례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면서 ‘탈시설’이라는 용어를 두고 논쟁이 붙었다. 일각에선 숙의가 이뤄지기보단 시의회 논의가 ‘탈시설’이라는 세 글자가 유엔(UN) 장애인권리협약(협약)에 담겼는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편협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엔본부. AP연합뉴스

2001년 제53차 유엔총회에서 제안된 이 협약은 국내에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09년 1월10일부터 발효됐다. 본문은 50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고 여성장애인과 장애아동의 권리보호, 장애인의 이동권과 문화접근권 보장 등 장애인의 전 생활영역에서 권익보장에 관한 폭넓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지난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소라 복지위 부위원장은 “탈시설 지원조례라는 게 사실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에서 협약 안에도 담겨 있는 내용이고 시설과 탈시설이 함께 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 당사자분들이 굉장히 많으세요”라고 말했다. 이에 유 부위원장은 ‘탈시설’이라는 용어가 협약 안에 담겨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협약에 ‘탈시설’이라는 표현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협약 제19조 ‘자립적 생활 및 지역사회에의 동참’은 협약의 당사국이 ‘모든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한 선택을 통하여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짐을 인정하며, 장애인이 이러한 권리를 완전히 향유하고 지역사회로의 통합과 참여를 촉진하기 위하여, 효과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탈시설이라는 말이 없을 뿐이지 탈시설을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국제조약기구가 협약 등 조약 항목의 의미하는 바를 구체화하는 ‘일반논평’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2017년 발표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CRPD)의 ‘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 포용에 관한 일반논평 5호’는 ‘당사국은 반드시 탈시설화를 위한 전략 및 구체적 행동 계획을 채택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더군다나 CRPD는 2022년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CRPD는 협약 이행을 감독하는 기구로 모든 당사국이 주기적으로 제출하는 장애인권리협약 국가별 보고서에 대한 심사 및 협약 이행 권고를 맡고 있다.

 

협약에 탈시설의 의미를 담은 조항이 있을뿐더러, 국내 법률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명령이나 행정규칙 등 하위법령에 위임하는 것처럼 일반논평과 가이드라인에서 탈시설을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 부위원장은 일반논평에서 ‘Deinstitutionalization(탈시설)’이란 단어가 사용된 건 국내 단체가 제출한 요청서를 인용한 것이며, 이 역시 인권위가 ‘탈시설화’라는 넓은 의미로 번역한 것을 일부 단체가 물리적으로 시설에서 나간다는 의미의 ‘탈시설’로 좁혀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청은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답변 내용을 협약에 국한한 것은 질문에 대한 답변일 뿐이며, 협약은 국회 비준을 받지만 일반논평과 가이드라인은 비준 대상이 아니므로 다르게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일반논평이나 가이드라인도 해석에 따라 협약으로 볼 수도 있지만 (유 부위원장이) 협약을 물으셨기 때문에 협약에 없다는 걸 말씀드린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CRPD 입장은 다르다. 김미연 CRPD 위원은 2022년 11월3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가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한국은 법률에 의한 내용도 가이드라인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참고 내용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탈시설 가이드라인은 분명하게 (국내법과 같은) 법적인 효력을 명시하고 있고, 가이드라인 자체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문서”라고 지적했다. 2018년 당선된 김 위원은 2022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치러진 CRPD 위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2021년 한국인 최초로 CRPD 부위원장에도 당선된 바 있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는 유럽자립생활네트워크(ENIL) 등 10개 국제 장애단체가 탈시설 조례 폐지조례안 규탄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협약은 당사국이 탈시설을 포함한 협약이 인정하는 모든 권리 이행을 위한 적절한 법률적, 행정적 및 기타 조치를 채택”하도록 규정한다며 “입법기관의 조례입법행위 역시 이러한 협약의 기준과 정신에 일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탈시설을 찬반으로 몰고 가는 프레임이 맞지 않다고 본다”며 “인권 문제이자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엔 생명권의 문제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활동가는 “탈시설 조례 반대 측은 의사 표현이 힘든 중증장애인의 콧줄 낀 모습 등을 자극적으로 보여주며 장애인을 열등하게 처우해도 되는 사람, 시설에 있는 게 최고인 사람으로 묘사하는데, 이들은 오히려 개인별 지원이 많이 필요하다”며 “해외에선 의사소통지원 서비스와 함께 탈시설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정부와 지자체의) 책무인데 한국에선 노력을 더 들이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람은 탈시설 안 돼’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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