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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평양공항의 김정은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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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6-19 21:27:35 수정 : 2024-06-21 14: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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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2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계기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푸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을 전하며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진핑은 “명분이 무엇이든 올림픽 기간 중의 군사행동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고 한다. 애초 두 정상의 회담은 오찬을 겸해 이뤄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푸틴이 회담 장소인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 도착한 시각이 벌써 오후 3시가 지난 뒤였다. 부득이 오찬은 취소되고 급하게 만찬 일정으로 변경됐으니 심각한 외교 결례라 하겠다.

 

19일 오전 북한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인사를 나눈 뒤 이동하고 있다. 김정은은 그 뒤에서 푸틴의 수행원과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푸틴의 지각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2014년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 때는 무려 4시간15분 늦게 나타났다. 2015년엔 프란치스코 교황을 70분이나 기다리게 만들어 가톨릭 교회의 공분을 샀다.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9년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중 열린 문 대통령과의 한·러 정상회담에서도 2시간 가까이 지각했다. 이쯤 되면 ‘지각 대장’, ‘상습범’ 등 얘기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푸틴이 시간 약속을 정확히 지킨 것이 되레 뉴스가 되곤 한다. 2021년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이 대표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푸틴과 대면하는 자리였기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회담 취재를 위해 몰려든 기자들 사이에 ‘푸틴이 바이든을 얼마나 기다리게 만들까’ 하고 내기하는 모습도 관측됐다. 그런데 푸틴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바이든보다 15분 먼저 회담장에 나타났다. 그만큼 미국 대통령을 존중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지각 대장’이란 오명을 벗기 위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조선인민군 장교의 안내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AP뉴시스

19일 북한을 방문한 푸틴이 오찬이 만찬으로 대체되는 정도와는 차원이 다른 결례를 저질렀다. 원래 18일 저녁 평양 비행장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자정을 넘겨 이튿날 새벽 2시40분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1박2일 국빈 방문 일정이 한순간 당일치기로 바뀐 것이다. 그때까지 공항에서 대기하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푸틴이 전용기에서 내리자 환하게 웃으며 그를 얼싸안았다.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으나 ‘백두혈통’의 적자로서 부아가 치밀어 오르지 않았을까. 문득 올해 40세가 된 김정은의 인생에서 누군가를 그토록 오랫동안, 또 간절하게 기다린 적은 이번이 처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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