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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순이·밍밍이 치료로 추억을 고쳐드립니다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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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4-23 10:30:00 수정 : 2023-04-23 10: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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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형 수선병원 ‘안나’

‘선생님, 밍밍이가 건강해져서 돌아올 수 있게 예쁘게 치료해주세요.’

‘이 아이 이름은 또순이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5세 딸아이의 소중한 친구입니다.’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인형병원 안나에서 어머니가 실과 바늘로 인형을 수선하고 있다.

자칫 보면 동물병원에서 수의사한테 건네는 말 같지만, 이곳은 동물병원이 아니다. 사람들이 반려동물만큼이나 소중히 여기는 반려인형을 맡기는 곳, 인형병원 ‘안나’의 벽 한쪽에 붙은 메모다. 어머니와 두 딸이 함께 운영하는 인형병원에는 손님들이 적어준 메모가 빼곡하게 붙어있다. 아이가 쓴 것 같은 삐뚤삐뚤한 글씨부터, 연륜이 느껴지는 필체까지. 인형병원을 운영하는 어머니는 메모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가며 세심하게 다친 인형을 보살핀다. 인형을 맡기는 사람의 애정도, 인형을 고치는 사람의 정성도 단순히 물건을 대하는 태도 이상이다. 그래서 이곳은 ‘수선소’가 아닌 ‘병원’이라고 불린다.

완구회사 개발실에서 인형 시제품을 제작하던 어머니는 퇴직 후 딸들의 권유로 2016년 인형병원을 개원하게 됐다. 일을 시작할 때는 완구회사에서 하던 일과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새 인형을 만드는 것과 누군가의 인형을 고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었다. 맡는 인형마다 저마다의 사연과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형병원에는 여러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찾아왔다. 30년 넘은 애착 인형을 맡긴 손님, 완성된 인형을 받고 기뻐하던 어린이, 유품이 돼버린 애착 인형을 맡긴 가족…. 인형을 고치는 어머니에게는 더 많은 책임감 그리고 보람이 생겼다. “손님 한분 한분이 모두 기억나요. 제각각 다른 사연이 있거든요.”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인형병원 안나에서 어머니와 딸이 인형을 수선하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인형병원 안나에서 어머니와 딸이 애착인형을 들고 있다.

인형을 고치는 데는 많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안고 자거나 항상 지니던 인형이기에, 처음 인형을 받으면 해진 곳도 많고 솜도 많이 줄어있다. 일을 시작한 초기에는 인형을 처음 샀을 때처럼 깔끔하게 고쳤다. 솜도 빵빵하게 채웠다. 하지만 오랜 기간 함께 지내 조금은 때가 타고 홀쭉한 인형의 모습이 익숙했던 주인들은 새것처럼 변한 인형을 낯설어했다. 그래서 지금은 의뢰를 받을 때 주인과 충분히 상의 후에 솜을 얼마나 채울지, 어떻게 고칠지를 정하고 인형을 고친다.

손상된 부분을 수선할 때는 원래와 같은 원단을 써야 한다. 만약 같은 원단을 찾기가 불가능하다면 최대한 비슷한 원단을 사용한다. 매일 만지던 인형의 촉감을 생생히 기억하는 주인이 미세한 차이에도 인형을 낯설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맞은 부자재를 찾아 눈과 코를 새로 달고, 꼼꼼하게 자수를 놓으며 수선하고, 손님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서 솜과 원단까지 빨래해야 비로소 하루가 끝난다. 보람과 재미를 느끼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고된 일이다.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인형병원 안나에 손님들이 보낸 요청사항 쪽지들이 붙어 있다.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인형병원 안나에서 어머니가 미싱기로 인형을 수선하고 있다.

인형병원은 처음에는 블로그로 주문을 받고, 택배로 인형을 받아 집에서 수선해 돌려보냈다. 찾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싶었는데 의외로 손님은 꾸준히 있었다. 그 결과 지난해 서울 송파구에 오프라인 매장을 낼 수 있었다. 모니터 너머의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 되었는데, 의외로 세대도 성별도 다양한 사람들이 인형병원을 찾는다.

다섯 살 딸아이의 소중한 친구 또순이, 찬이가 아끼는 친구 밍밍이…. 다양한 친구들이 인형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떠난다. 오늘도 인형병원의 장을 빼곡하게 채운 원단들은 세월에 해진 구멍을 덮고, 오색형형한 실들은 이곳저곳 찢긴 상처를 기운다.


글·사진=최상수 기자 kilr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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