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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부, 주민 소통 이어가며 맞춤 정책… 지속 가능성 찾아내” [심층기획-‘환경 우등생’ 캘리포니아를 가다]

, 세계뉴스룸 , 환경팀

입력 : 2023-02-03 06:00:00 수정 : 2023-02-03 08: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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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환경 리더십’을 말하다 <끝>

고예강 교수
주민들 일상생활서 환경가치에 중점
학창시절부터 기후위기 심각성 인지
지역 정치인도 환경 어젠다 중시 여겨

박숙현 교수
정책로비스트, 대기자원위 관계 ‘끈끈’
주정부, 지역민 애로점 듣고 적극 반영
‘정권 따라 네트워킹 단절’ 한국과 대조

류희욱 교수
IT·농업 위주 산업, 정책 선도화 동력
환경규제 통한 신산업 창출 전략 주효
韓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 전환 필요

임정근 교수
공청회·대화·제안·수정… 수시로 소통
캘리포니아주 ‘합의의 기술’ 표본 삼아
한국도 방향 정하면 지속 교류·추진을

맨송맨송한 흙더미 위에 듬성듬성 자라는 나무들. 지난해 10월 말 미국 캘리포니아의 풍경은 다소 삭막했다. 연간 강수량이 50cm도 안 되는 곳이 태반인 이곳 산들은 1960년대 우리나라의 민둥산을 연상케 했다. 그래서일까.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던 당시, 주지사 후보 TV토론회에서는 수자원 확보 방안, 기후변화 대응과 적응 대책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50년 전만 해도 캘리포니아는 극심한 대기오염으로 악명 높았다. 깨끗한 공기를 되찾겠다는 의지는 공격적인 정책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지금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 환경 정책을 선도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서울 동작구 숭실대 형남공학관 연구실에서 <‘환경 우등생’ 캘리포니아를 가다>를 함께한 류희욱 숭실대 교수(오른쪽부터), 박숙현 지속가능시스템연구소 소장, 고예강 미국 오리건주립대 교수, 임정근 대학ESG실천포럼 공동의장, 윤지로 기자가 캘리포니아 환경정책 거버넌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뭄, 기세를 더하는 산불을 통해 피부로 느껴지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는 또다시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 팀이 만난 캘리포니아주 환경 당국 관계자들은 10∼20년 뒤까지 내다본 촘촘한 계획표에 따라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환경 우등생’ 캘리포니아를 가다>를 정리하며 기획을 함께한 임정근 대학ESG실천포럼 공동의장, 류희욱 숭실대 교수, 박숙현 지속가능시스템연구소 소장과 본지 윤지로 기자는 지난달 16일 다시 한 번 숭실대에 모여 2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 상황을 잘 아는 고예강 미 오리건주립대 교수도 함께했다.

고예강 교수(이하 고)=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어떤 목적이었는지 궁금하다.

임정근 교수(이하 임)=2019년 3월 한국은 미세먼지로 일주일 이상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화가 나서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미국이 일찌감치 대기청정법(CAA)을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해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 마침 주한미국대사관이 미 국무부가 지원하는 ‘굿 거버넌스’ 연구 프로젝트를 공모하기에 미세먼지를 주제로 신청해 선정됐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터지면서 2년 넘게 지체돼 지난해 10월 말 간신히 미국 현지를 방문할 수 있었다. 지면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을 조율해준 메릴랜드주 환경국의 조엘 드리슨 박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시민이 밀고, 정부가 끈다

박숙현 교수(이하 박)=연방정부 환경 기준보다 강화된 기준을 설정할 수 있는 유일한 주가 캘리포니아다. 나머지 49개주는 연방정부 기준을 따를지, 캘리포니아 기준을 따를지 선택하도록 돼 있다.

임=로스앤젤레스(LA)가 워낙 스모그가 심했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강한 규제가 필요했는데 그걸 연방정부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에 예외를 인정해준 것이다. 반발도 있지만, 캘리포니아 기준을 따라가는 주가 많다.

류희욱 교수(이하 류)=강력한 정책을 추진해도 불편함보다는 편익이 크다는 걸 아니까 강한 규제를 이어갈 수 있는 것 같다. 우리도 시화·반월공단이 조성되면서 악취와 대기질 악화가 심각한 문제였는데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지금은 굉장히 많이 좋아졌다.

윤지로 기자(이하 윤)=정부도 2015∼2019년 미세먼지로 여론이 악화하니까 대책도 줄줄이 내놓고 실제로 농도도 낮아지고 있다. 미세먼지는 우리가 직접적인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에 반응이 즉각적인데 기후변화는 우리가 직접 편익을 느낄 수가 없으니까 관심이 확장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래로부터의 요구가 기후변화에서도 생겨났으면 좋겠다.

박=한국에도 환경단체가 많은데 정부와의 관계가 묘한 것 같다. 정부에 따라서 협력 수준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환경부와 시민단체의 파트너십이 어떤 정부에서는 잘 됐다가 어떤 정부에서는 안 됐다가 그런다. 캘리포니아주는 정책 로비를 하는 사람과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의 관계가 꾸준히 지속된다. 우리는 공무원이 순환보직을 하다 보니 네트워킹이 더 유지되기 어렵다.

류=CARB의 메리 니콜스도 민주당·공화당 주지사 아래서 의장을 세 번이나 하지 않았나. 이곳에선 방향성을 갖고 꾸준히 단계별로 법을 만들어 성과를 보면서 추진할 여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예산과 인력을 뒷받침하는 게 바로 이 CARB라는 위원회다. 우리도 위원회는 많지만 대부분 단발성이고 더구나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는 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고=일단 캘리포니아에는 환경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 많이 산다. 그런데 정치적 양극화처럼 환경 어젠다에서도 일종의 양극화가 보인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은 환경 정책을 비중있게 요구하고, 캘리포니아 정치인도 이런 유권자를 의식해 환경으로 어젠다를 몰고 간다. 이런 걸 싫어하는 사람은 텍사스주나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 내가 있는 오리건주는 캘리포니아와 비슷한데 이런 분위기가 교육으로도 이어져서 초등학생부터 기후변화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다. 환경 의식을 갖고 대학에 들어오는 친구도 많다. 또 캘리포니아는 매년 산불이 나는데 그때 대기오염 농도는 미세먼지랑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 이런 것도 기후변화 위급성을 느끼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문제는 환경정의

박=대기오염 문제를 지역사회, 환경정의 측면에서 풀기 위한 AB617(캘리포니아 법)에도 꽤 많은 예산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남부해안 대기질관리지구(South Coast AQMD)도 지역사회 관련해서만 2000만달러(약 247억원)가 잡혀 있더라. 샌프란시스코만 대기질관리지구(BAAQMD)도 그렇고, 환경정의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AB617 내용 자체도 관이 주도해서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라 지역주민을 만나서 힘든 점이 뭔지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맞게 맞춤형 지원해준다는 게 굉장히 인상 깊었다.

고=캘리포니아 환경정책에는 환경정의, 에너지정의가 빠짐없이 나온다. 제일 중요한 주제다. 커뮤니티가 원하는 걸 해주는 건 인정 정의(recognition justice)라고 해서 이 또한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때 지식과 정보 전달이 중요하다. 취약지역은 지식 전달도 어려운 면이 있다. 신선한 음식 공급이 잘 안 되는 어느 커뮤니티에서 주민들에게 ‘가장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맥도널드’라는 대답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갑자기 기억이 난다.

박=시민들이 문제의 원인, 현황에 대해 충분히 인식이 안 된 상태라면 그걸로 어떻게 적합한 정책을 만들 수 있을까 싶다.

윤=깊이 있게 대화하다 보면 대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주민들이 비록 맥도널드라고 대답했다 할지라도 거기엔 맥락이 있을 거다. 식품에 대한 교육이 부족했거나 신선한 식재료를 받아도 요리해 먹을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커뮤니티와의 대화란 결국 그런 특수한 맥락을 찾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임=동의한다. 정책의 핵심에 당사자를 놓는 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욱 교육이 중요하다고 본다.

◆“기후위기에서 기회를”

류=캘리포니아가 강력한, 선도적인 정책을 펼 수 있었던 건 스모그도 있지만 산업구조의 차이도 있다고 본다. 제조업 대신 정보기술(IT)이나 농업이 주를 이루고 대체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광활한 영토도 있다. 또 역설적으로 제조업이 없다 보니 환경규제를 신산업으로 만들려는 전략이 통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디젤차 배출가스를 제어하려면 촉매 개발이 필요한데 그걸 캘리포니아에서 제일 먼저 하지 않았나. 에너지 다소비 구조를 바꾸고, 산업이 필요로 하는 공정을 개발하는 것, 이것도 다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

박=우리도 연구개발(R&D) 관련해서 논의할 때 ‘규제가 시장을 창출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한다. 그런데 평가기준이 되는 건 논문 몇 개 냈나, 특허 몇 개 냈나, 이런 부분이다. 시장이 만들어져야 그 기술을 사용하고 팔 수 있는데 평가는 ‘특허 몇 개 냈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쓸모없는 기술이 되고,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류=나도 ‘새로운 법이 만들어졌으니 새 시장이 만들어지겠구나’ 싶어 랩 벤처에 투자도 해봤고, 창업도 해봤다. 그런데 최소한의 규제만 하다 보니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너무 많아 시장이 열리지 않더라.

임=미국도 400만개의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걸 내놓고 있다. 탄소포집·저장·활용(CCUS)만 봐도 완전히 새로운 기술과 산업이 등장하는 것 아닌가.

박=저는 환경운동가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까 소비를 줄이고, 산업을 생태문명으로 바꾸자는 이야기를 하는데 캘리포니아는 계속해서 경제를 키워가는 녹색성장을 추구한다. 이 부분이 마음속에선 갈등이 된다. 이게 과연 지속가능한 문명인가, 하는 부분은 계속 고민이 된다.

임=캘리포니아가 분명하게 앞서 있는 건 합의의 기술이 아닐까 싶다. 수시로 공청회를 열고, 대화하고, 제안을 받고, 수정하고 하는 과정이 우리는 너무 미흡하다. 방향을 정하고 계속해서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류=전 전문화와 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다. 정책을 수립하고 성과를 분석할 전문성과 독립성이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무원 뺑뺑이 돌리는 것부터 없앴으면 좋겠다. 우리는 자원이 없기 때문에 신산업 육성으로 정책 방향을 잡고 나아가야 한다.

윤=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한다는 기사를 쓰면 댓글에 ‘조그만 땅덩이에서 무슨…’ 식의 반응이 많다. 솔직히 나도 이번에 캘리포니아를 보고 부러웠다. ‘세상에, 노는 땅이 있다니…’ 하고. 하지만 앞서 교수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목표를 높이 잡아야 결국 그걸 달성하기 위해 기술이 나오고 시장이 열리는 것 아닌가. 지금 우리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7%)에 어울리지 않는 고민에 너무 에너지를 쓰는 것 같다. 마치 시골에 사는 내신 9등급 학생이 ‘서울대 가면 하숙집도 알아봐야 하고, 친구도 새로 사귀어야 하는데 어떡하지’ 고민하는 느낌이랄까.

고=노는 땅처럼 보여도 사실 정말 노는 땅은 아니고, 여기에도 갈등은 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커뮤니티 기반 접근을 강조하는 것이다. 국가적 환경 목표가 있고, 기업들이 아무리 야심 찬 계획을 세워도 결국 시행 단계에서는 지역사회가 중요하다. 지역사회가 동의하지 않으면 좋은 정책도 진행할 수 없지 않겠는가. AB617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지역민들이 직접 혜택을 누려야 국가 전환 정책이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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