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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4m 높이 담장으로 둘러싸여 오랜 시간 도시와 단절됐던 대규모 공터.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 49-1번지 일대 3만7117㎡. ‘송현동 부지’다. 이곳은 110년 넘게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밖에서 들여다볼 수조차 없었다. 송현(松峴)은 소나무 고개라는 뜻인데, 조선 건국 초기부터 지명이 등장한다. ‘태조실록’에 따르면 1398년 4월 16일 태조 이성계는 “경복궁 왼쪽 언덕(송현)의 소나무가 마르므로 그 가까운 언덕의 집을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송현에는 조선 시대 왕족과 세도가들이 살았다. 조선 초기에는 안평대군의 사저였고, 인조 때는 봉림대군의 사저로 사용됐다. 숙종 때 장희빈도 잠시 이곳에 거처했다.

송현에는 조선 건국과 망국을 주도한 두 신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정도전과 윤덕영이다. 1398년 8월 26일 조선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이 이방원(훗날 태종)의 수하에게 죽임을 당한 곳이 송현 일대다. 권력의 부침에 따라 1910년 직후 송현은 순종의 장인인 윤택영과 그의 형 윤덕영 등에게 넘어갔다. 윤덕영은 악질 친일파로 순종을 협박해 한일병합조약을 관철했다. 국권피탈에 앞장선 윤덕영은 이완용 등과 함께 ‘경술국적(庚戌國賊) 8인’으로 불린다.

윤씨 형제는 1919년 송현동 땅을 일제의 조선식산은행에 넘겼고, 식산은행은 여기에 사택을 지었다. 해방 뒤 이 땅은 미국에 넘어갔고, 50년가량 미국대사관 직원들의 숙소로 사용됐다. 이후 소유권이 한국 정부에서 삼성생명으로, 다시 대한항공으로 넘어가며 20여년간 방치됐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대한항공,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시가 맺은 3자 매매교환 약정에 의해 소유권이 서울시로 넘어갔다.

담장을 1.2m 돌담으로 낮추고 공원으로 새로 단장한 송현동 부지가 어제 오후부터 시민에게 임시 개방됐다. 2년의 임시 개방 기간이 끝나면 2025년 1월 부지 안에 ‘이건희 기증관’을 포함한 ‘송현문화공원’을 착공해 2027년 완공·개장할 계획이다. 녹지가 턱없이 부족한 서울 도심에 서울광장보다 3배나 넓은 시민의 쉼터가 생겼다니 더없이 반갑다. 이 땅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풀어가며 너른 녹지를 걷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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