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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비염이 생겼다. 아니, 되짚어 생각해보면 전조증상은 많았다. 그동안 콧속이 가렵거나 뻑뻑해 자주 손이 갔는데 무심히 넘겼었다. 처음에는 비염인 줄 몰랐다. 그저 콧속이 건조하거나 먼지 때문에 생긴 일시적 증상일 거라 생각했다. 헌데 작년 겨울부터 갑자기 코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고질적인 환부로 자리 잡았다. 사포로 긁는 듯한 통증과 함께 콧속이 간지럽고 당기면서 코로 연결된 모든 기관들이 방사통으로 불편했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초기에 치료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사람이 미욱하다보니 시기를 놓쳐버린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동안 지나치게 건강을 낙관했었다. 몸 여기저기 나타나는 불편함들은 그저 과로 때문이겠거니 여겼다. 조금 쉬고 나면 말짱하게 아프던 것들이 사라지니 그럴 만했다. 어쨌거나 새로 생긴 이 비염이 여간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날이 조금만 추워도, 몸에 한기가 쌓이거나 건조해도 발작처럼 콧속이 난리가 나면서 주의력과 집중력을 앗아간다.

이런 증상과 불편함을 들은 한 지인이 신이화를 먹어보라고 일러줬다. 신이화라니. 이 생소한 이름의 약재가 무엇이냐고 묻자 목련 꽃봉오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목련 꽃봉오리나 막 맺히기 시작한 꽃 잎을 차로 우려내 먹으면 비염이 낫는다고 했다.

아, 목련꽃!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내게 목련꽃은 아릿한 통증을 안겨주는 꽃이었다, 기실 아릿한 통증의 다른 의미는 그리움이었다. 목련꽃은 아버지가 사랑한 꽃이었는데, 목련의 계절이 돌아오면 나는 이상한 통증을 느끼곤 했다. 헌데 그 꽃이 비염에 최고라니. 평소에도 나는 꽃잎차를 좋아하지 않았다. 맛이 없다기보다는 꽃잎차를 마시는 일은 삶의 사치라고 여겼다. 삶은 그런 호사를 누릴 만큼 여유롭지 않은 것이라고, 투쟁하듯 살아내야 하는 것이 삶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데 내가 그런 꽃잎차를 마시게 될 줄이야.

그 사람의 조언대로 신이화를 사와 끓이고 목련꽃차를 주문해 차로 우려마셨다. 뜨거운 물에 퍼지는 꽃잎과 봉오리를 보고 있으려니 내심 마음 한 구석이 짠했다. 그냥 두었더라면 아마 이 꽃들은 또 한세상, 환한 시절을 이루고 다음을 기약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니겠는가. 찻잔 속에 퍼지는 목련의 향기와 빛깔이 참 고왔다. 기분이 맑아짐과 함께 정말 짜증나게 하던 비염도 숙어지는 느낌이었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겨우내 응축돼 있던 생의 에너지와 기운이 찻물에 풀어지는데, 그 기운을 마시는데, 왜 나아지지 않겠는가.

살다보면 삶을 위로하는 것들은 많다. 생각지도 않은 것들이 나를 위로하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 통증을 일으키던 꽃으로만 여기던 목련이 나를 위로하고 치유의 선물을 안겨줄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바라건대 나도 이렇듯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목련처럼.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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