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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누빈 평화사절단, 한국 전통문화 아이콘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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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1-20 20:38:58 수정 : 2022-01-20 23:5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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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엔젤스 창단 60주년 심포지엄

신순심·박성옥 콤비가 인재영입·지도
장구춤·부채춤·무사놀이 등 만들어내
민간예술단체로는 이례적 활약 주목
“당대 공연문화 이해 귀한 자산 가치”

전문 매니지먼트 통해 대륙별 투어
인성교육 중시, 안전사고 0건 기록
1960년대엔 국제행사 단골 공연도
“경이적인 무용단”… 해외 현지 열광
1973년 미국 뉴욕 UN총회의장 공연 모습

“전후 우리나라 이미지가 전쟁, 고아, 국제구호로 점철된 시대에 창설된 리틀엔젤스는 우리나라 고유 민속과 전통문화예술을 전 세계에 알리고 국가이미지를 향상했습니다. 그간 이룬 성과는 어린이 예술단으로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고 일반 국공립단체와 비교해도 혁혁한 성과입니다.” -심정민 무용평론가·전 한국춤평론가회장-

 

“리틀엔젤스는 그동안 어린이예술단이라는 점과 문화사절단 역할 수행에 가려 예술성의 평가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았고, 민간단체여서 공적 예술사 서술에 포함되기도 어려웠는데 앞으로 근현대 공연예술사에서 입체적 고찰이 필요합니다.” -김희선 국민대 교수, 국립국악원 연구실장 및 국악원장 직무대리 역임-

 

오는 5월 5일 창단 60주년을 맞는 리틀엔젤스예술단이 걸어온 길은 경이롭다. 최빈국 탈출이 급선무였던 전후 척박한 풍토에서 오로지 이상과 열정으로 국경을 뛰어넘는 예술혼을 보여줬다. ‘1962년’이란 창단연도는 국립무용단, 국립발레단 등과 어깨를 같이 한다. 미·소 정상과 영국 여왕 앞에서 공연했으며 최초로 ‘문화올림픽’을 표방했던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문화행사를 위한 국가문화사절로 선발돼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 후 다른 국립공연단체가 자리 잡기 전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사절단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춤추고 노래하는 작은 천사들’, ‘평화의 천사’로 그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그런데도 문화예술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리틀엔젤스의 지난 60년과 앞날을 밝히는 학술행사가 지난 19일 서울 선화예술중학교 선화아트홀에서 열렸다. 우리나라 국악·무용 관계자와 문화 다방면에서 활약 중인 리틀엔젤스 출신 동문, 그리고 신순심 초대단장과 박노희 효정한국문화재단 이사 등 리틀엔젤스와 인생을 함께 한 공헌자들이 참석한 뜻깊은 자리였다. 리틀엔젤스 출신이기도 한 문훈숙 효정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은 “민간예술단체가 일관된 이상을 가지고 전 지구를 상대로 60년간 예술활동을 펼친 사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한류라는 개념이 없을 때 리틀엔젤스는 평화사절로 활약하며 철의 장막, 죽의 장막, 그리고 삼팔선을 넘어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고 소개했다.

 

오는 5월 5일 창단 60주년을 맞는 리틀엔젤스예술단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조망하는 학술 심포지엄이 지난 19일 서울 선화예술중학교 선화아트홀에서 열렸다. 리틀엔젤스의 문화예술적 위상과 역할에 대한 학술 발표 후 리틀엔젤스 출신 예술가 등이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곽은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이노연 국립남도국악원 초대안무자, 김덕수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박노희 효정한국문화재단 이사, 홍경희 한국춤문화포럼 대표, 정보경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이재문 기자

◆“당대 드문 선진 예술단체”

 

이번 심포지엄을 계기로 광범위한 조사를 한 김희선 국민대 교수는 그동안 어린이예술단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리틀엔젤스의 공연예술사적 의미에 대해 “여러 차원에서 당대 한국과 글로벌 공연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귀한 자산”이라고 규정했다. ‘어린이예술단’이란 이유로 평가절하할 게 아니라 당대 드물게 전문예술단체로서 운영체제를 갖추고 해외 매니지먼트를 통해 최전성기 때는 무려 1, 2, 3진으로 나눠서 대륙별 투어에 나설 정도로 활약했던 선진 예술단체였다는 설명이다.

 

공연 내용면에서도 초창기 라이브 공연이 함께했던 시대에는 당대 손꼽히는 국악인이 악사로 무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이들이 함께 만든 리틀엔젤스 레퍼토리는 현재 국악계 명인들에게까지 이어지며 우리나라 전통공연의 해외 레퍼토리 교과서가 됐다.

 

특히 김 교수가 ‘창설기(1962∼1964)’, ‘문화사절단 활동기(1965∼1976)’, ‘민간예술단 전환기(1977∼1989)’, ‘평화사절단 활동기(1990∼현재)’로 구분한 지난 60년 중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은 문화사절단 시절이다. 1965년 9월 첫 미국 공연 이후 76년까지 북미, 호주, 일본, 유럽, 동남아, 남미 공연을 수도 없이 다녔다. 각국 정상을 만났으며 국제행사 단골 초청 단체로 활약했다. 해외공연에서 돌아오면 귀국공연을 펼쳤고, 해외 정상이 내한하면 특별공연을 했다. 이 시절 리틀엔젤스 활약은 지금은 사라진 극장가 ‘대한뉴스’ 단골 영상으로 상영되며 국민 가슴에 깊이 각인됐고 그야말로 한국 전통문화의 ‘아이콘’이 됐다.

 

1960년대 공연 레퍼토리 시집가는 날 홍보사진

특히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사저 공연을 1호로 14차까지 진행된 리틀엔젤스 해외투어는 지금도 그만 한 규모로 해외공연에 나선 국내 단체가 아직 나오지 않은 전설적 규모다. 가장 대표적인 전미투어의 경우 한번 공연에 나서면 수개월 동안 어린 예술단원과 악사, 그리고 소수의 스태프가 투어버스에 악기와 무대소품, 그리고 살림살이에 가까운 짐을 싣고 미 대륙 70여 도시를 돌며 공연했다. 그러면서도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없었으며 항시 교사가 대동하며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전통이 초창기 때부터 형성됐다.

 

 공연은 대성황이었는데 “교포가 와서 자리를 채운 것이 아니라 양복 입은 현지 미국인들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는 증언이 나온다.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등을 거느렸던 당대 최고 기획사 컬럼비아아티스츠(CAMI)가 투어 일정을 관리했다. 영국에서 건너온 비틀스가 미국 첫 무대로 택했던 당대 최고 TV프로그램 에드 설리번 쇼에도 두세 차례 출연했을 정도다. 

 

1970년대 미국 투어 프로그램 표지 사진 등

리틀엔젤스 투어가 현지에서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킨지는 당시 언론에 실린 리뷰가 잘 보여준다. 지금이나 그때나 최고 수준 리뷰를 게재하는 미국 뉴욕타임스(1968)에 실린 평론가 안나 키셀로프의 리뷰는 “경이적인 무용단(A Phenomenal Company)”으로 시작한다.

 

“눈썹의 움직임으로부터 복잡한 발동작, 그리고 매우 현란한 장구의 장단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세부적인 공연내용은 천재적인 안무가 신순심씨에 의해 완벽하게 연출되었다. 리틀엔젤스의 공연에는 미숙한 순간이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프로그램에 배어있는 아름다움과 극적인 효과로 꽉 차 있을 뿐이었다.”

 

1998년 평양 학생소년궁전 공연 후 북한학생소년예술단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

  가장 영예로운 무대가 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어전 공연의 경우 원래 왕실 문화행사로 초청받긴 했으나 여왕 관람 계획은 없었다. 그런데 리틀엔젤스 공연이 주는 감동 소문이 여왕 귀에까지 들어가서 어전 공연까지 이뤄지게 됐다.

 

신순심 초대단장

◆신순심·박성옥이 만든 한국 전통예술의 하이라이트

 

이번 심포지엄에선 리틀엔젤스 공연의 내면에 대해서도 섬세한 관찰과 평가가 이뤄졌다. 특히 윤중강 음악평론가는 70년대 중반까지 활약한 38명의 악사 활동에 주목했다. 리틀엔젤스가 생음악으로 활동하던 시절 이들 악사 비중이 매우 높았는데 국립국악원 소속 악사들이 초기에는 중심을 이뤘다. 윤 평론가는 “리틀엔젤스 공연은 당시 젊은 국악연주자라면 누구나 참여하고 싶은 대표적 공연이었다”고 소개했다.

 

고 박성옥 무용음악가

리틀엔젤스 60년 역사의 초석을 쌓은 건 신순심·박성옥 콤비다. 리틀엔젤스는 창단 때부터 파격적으로 이화여대에서 발레를 전공한 당시 이십대 초반 젊은 무용가 신순심에게 무용지도를 맡겼다. 초대단장이 된 신순심은 여러 인재를 영입하고 레퍼토리를 만들며 엄격한 훈련으로 신생 예술단체 기반을 구축했다. 레퍼토리의 정체성을 만든 건 초창기 선화어린이무용단 단장 겸 연출을 맡았고 60년대 중반까지 작품 음악은 물론 안무까지 도맡았던 박성옥이다. 전설적 무용가 최승희와 함께 무대를 만들었던 박성옥은 “20세기 최고 무용음악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근대 전통무악의 거장 한성준을 사사하고, 조택원, 김백봉 등 신무용가들의 작품에 음악을 입힌 전통 예술가다. 명콤비가 만들어낸 부채춤, 장구춤, 농악, 강강수월래, 꼭두각시, 시집가는 날, 무사놀이 등은 시대 변화에도 변치 않는 우리나라 전통예술의 하이라이트가 됐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의 무용레퍼토리 진단’을 발표한 심정민 무용평론가는 “리틀엔젤스 레퍼토리는 원작의 틀을 유지하면서 유연하게 현대화 과정을 거쳐왔다”며 “대규모 군무의 화려한 꽃 대열을 처음 시도한 것도 리틀엔젤스라는 증언이 있다”고 소개했다. 무용역사학회 최해리 회장은 리틀엔젤스가 6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자산으로 문선명·한학자 창시자의 강력한 후원과 리틀엔젤스의 전통을 꼽았다. 그러면서 리틀엔젤스 전통으로 박보희 총재가 구축한 예술경영시스템, 박성옥과 신순심 콤비가 개발한 고전무용 레퍼토리, 공동체적인 훈련시스템을 강조했다.

 

1960년대 리틀엔젤스 귀국공연 포스터

리틀엔젤스 60년에 대한 이 같은 평가 후 미국 투어 등의 실무총책임자로 활약했던 박노희 효정한국문화재단 이사는 “청춘을 리틀엔젤스에 바치며 가졌던 고민과 어려움이 오늘 확 풀렸다. 저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리틀엔젤스가 그간 광야에 있다가 비로소 오늘 주류 무대에 동참하게 됐다는 생각을 한다”며 “‘리틀엔젤스’ 하면 ‘아 그거 코흘리개들이 하는 재롱이지’ 이런 얘기를 들어왔다. 오늘 지난 60년에 대한 평가를 직접 들으니 그간 걸어온 길이 정말 옳은 방향이었구나. 큰일을 했구나 하고 느꼈다. 창시자 문선명 총재님의 이상 실현이 인정받은 것이며 박보희 이사장님이 누구보다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정임순 리틀엔젤스 예술단장은 “오늘도 두바이 엑스포에서도 리틀엔젤스가 드넓은 행사장을 매일 삼만보씩 걸으며 하루 네 차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지난 60년간 숱한 역경과 어려움 있었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을 펼쳐왔다. 이제 ‘예술로, 세계로. 미래로’라는 구호대로 60주년을 계기로 더 특별한 예술단체로 나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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