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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1년이라는 빈 캔버스에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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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1-07 22:47:26 수정 : 2022-01-07 22:4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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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비치 ‘8개의 직사각형’

8개의 붉은 직사각형이 화면 가운데 배치됐다. 크기가 다르고, 방향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사각형 1개를 파란색으로 칠하면 어떨까. 느낌과 의미가 달라질 거다. 하나를 빼면, 하나를 세우면, 역시 느낌이 달라지고 그 해석도 달라진다. 이 작품을 그린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고민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말레비치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생략하다란 뜻 ‘abstract’를 어원으로 한 추상미술은 자연 속 대상을 생략·축약하는 과정을 통해 그림 자체의 형식으로 향했다. 몬드리안과 칸딘스키가 그 시작이었다. 몬드리안과 칸딘스키가 추상의 길을 열어 놓은 후, 대부분의 화가들은 ‘추상’이라는 새로운 미술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이들은 그림에서 대상의 흔적을 지워 버리고, 정신만을 통한 화면 구성을 이루려 했다. 몬드리안과 칸딘스키 그림이 추상으로 향했지만, 여전히 자연과 세계에서 받은 감동을 바탕으로 한 점을 극복하려 했다. 말레비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말레비치는 자연으로부터 어떤 대상도 가져오지 않고, 그림 자체의 공간 구성을 만들어 그것이 진정한 예술적 창조라고 했다. ‘8개의 직사각형’은 이렇게 탄생됐다. 8개의 붉은 직사각형이 서로 다른 크기로 인한 율동감을 주고, 미세한 방향 차이와 사각형들 사이의 거리감이 만든 긴장감도 스미게 했다.

이런 것도 미술작품일까? 미술을 보는 관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사실주의 그림뿐만 아니라 광고 포스터나 상품 포장지, 기하학적 디자인에서도 미적 즐거움을 경험한다. 미술의 새로운 시도가 미적 즐거움의 영역을 넓혀 놓은 덕택이다. 말레비치에 의해서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만으로 그림이 될 수 있고, 미적 즐거움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새해가 밝았다. 앞으로 1년을 바라보며 계획을 세우는 때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어느 것을 앞세우고 어느 것을 뒤로할 것인가의 구성 말이다. 화가가 고민하는 것처럼 1년이라는 빈 캔버스에 우리만의 그림을 그려 보자.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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