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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살며] 한국 유학을 결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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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28 23:07:45 수정 : 2021-07-28 23: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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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변에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내 한국 정착 경험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유학길에 오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한국어를 배우러 직접 나서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길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지만 몇 년 전에 비해 더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 된 것은 사실이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14세 때 우연히 한국 뮤직비디오를 본 후, 한국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원래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차츰 음악뿐 아니라 음식, 드라마 등 한국문화에 빠져들었다. 취직하고 난 이후에는 3개월에 한 번꼴로 한국 여행을 했다. 한국 여행을 다니면서 언젠가부터 “한국에 살고 싶다” “한국어를 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키이케 하루카 치위생사

그러던 중 다니던 직장에 한국 분들이 방문하여 직장 소개를 한국 말로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나는 걱정도 되고 긴장도 됐지만 한국 친구의 도움을 받아 소개 내용을 만들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어로 한 안내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만족할 수 없었다. 방문한 한국분들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어 몸짓이나 손짓, 번역기를 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수준은 한국어를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기에 그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

문제는 지방에 살고 직장을 다니며 유학 준비를 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유학원을 통해 절차를 밟아갔다. 유학원을 이용하는 것은 비용이 좀 드는 단점이 있었지만 어학당을 고를 때나 유학 중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장점 때문이었다.

이윽고 한국으로 떠나던 날, 나는 공항으로 가는 고속철도(신칸센)에서 하늘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았다. 가슴이 벅찼다. 유학 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고향을 떠난다는 외로움이 뒤섞이며 눈물이 났다.

도착한 인천국제공항, 여러 번 오갔던 공항이었지만 느낌이 너무 달랐다. 일본에 돌아갈 날짜도 정하지 않았고 아는 사람조차 없었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니지만, 당시에는 새롭게 닥칠 일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던 것 같다. 여행으로 다른 나라에 가는 것과 생활을 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때 처음 느꼈다.

이후 어학당에 도착해 직원이 한국어로 뭐라고 설명을 해줬다. 그런데 사실 나는 50%도 이해하지 못했다. 분반고사를 치르고 난 후 ‘3급’ 과정을 듣게 됐다. 그런데 나는 듣는 것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문법을 잘 모르므로 첫 수업 이후 선생님께 기초부터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이렇게 시작된 ‘1급’ 과정, 이건 또 너무 쉬웠다. 그래도 즐거웠다. 다른 나라 친구들과 듣는 수업이 재미있었다. 단어나 문법을 하나씩 배우면서 마치 점이 선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유학, 비로소 새로운 생활의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는 것 같았다.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앞섰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씩 마음 한편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의 한국 유학생활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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