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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와 평화의 교환’ 양측 국민 모두 외면… 사실상 좌초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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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13 10:00:00 수정 : 2021-06-13 1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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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 ‘두 국가 해법’ 평화 가져올까

‘독립 국가로 공존’ 오슬로협정서 첫 도출
라빈 이 총리·아라파트 PLO 의장 작품
2차협정 이후 양쪽 모두서 반대 목소리

이 네타냐후 총리,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서안 정착촌 확대 등 ‘두 국가 해법’ 힘빼기

팔 내분·지도부 무능·부패, 상황 악화 한몫
아바스 PA 수반, 팔레스타인인 68% 반대
이 정치권 우파 득세… ‘두 국가 해법’ 뒷전

평화협상 2014년 美 중재 실패한 뒤 중단
일부 “평화는 단일 국가서만 찾을 수 있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무력 충돌 11일 만인 지난 5월 21일(현지시간) 휴전에 합의했다.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 하눈으로 돌아온 주민들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부서진 주택을 살펴보고 있다. 가자시티=AP연합뉴스

지난달 21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가까스로 포성이 멎었다. 이제 관심은 일시적 평화가 아닌 항구적 평화 정착 방안에 쏠린다. 일명 ‘두 국가 해법’이 그 방안으로 여겨져 왔다.

양측은 독립된 국가로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이 해법을 두고 지난 30년간 지난한 협상을 벌여 왔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태다. 두 국가 해법은 진정한 해법인 걸까.

◆양 지도자 극적 합의… 내부 반대에 ‘좌초’, 네타냐후 등장

두 국가 해법은 1993년 ‘오슬로협정’에서 도출됐다. 당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노르웨이 중재로 오슬로에서 만나 협정에 서명해 평화의 기틀을 닦았다.

‘영토와 평화의 교환’이 협정의 기본 원칙이다. 아라파트 의장은 테러와 폭력을 포기하고 이스라엘 생존권을 인정하는 대신, 라빈 총리에게 ‘1967년 이전 경계선’으로 철수할 것을 제안했다. 1967년 이전 경계선이 기준인 건 그해 6일간의 제3차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동예루살렘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사메 수크리 이집트 외무장관이 지난 5월 30일(현지시간) 수도 카이로에서 자국을 방문한 가비 아슈케나지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회담하고 있다. 두 나라 장관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휴전을 안착시키는 방안을 논의했다. 카이로=EPA연합뉴스

라빈 총리는 이를 받아들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립에 합의했다. 예루살렘의 지위, 최종 국경, 가자지구와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등 논쟁적인 문제들은 그 뒤에 논의하기로 했다.

오슬로협정 이후 협상은 한동안 계속됐다. 1994년 PA가 수립됐고 라빈 총리와 아라파트 의장,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듬해 오슬로 2차 협정 체결로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이 확대됐다. 가자지구와 서안을 A·B·C 구역으로 나눠 A와 C 구역은 각각 PA와 이스라엘이 관할하고, B 구역은 PA 행정 구역이지만 이스라엘과의 공동 경비 구역으로 잠정 합의했다.

이내 양쪽 모두에서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두 국가 해법을 거부하며 자살 폭탄 공격을 시작했다. 라빈 총리는 유대인 극우주의자에게 암살됐다.

이런 위기를 기회로 바꾼 인물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다. 그가 이끄는 우파 성향 리쿠드당은 1996년 총선에서 평화와 안보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승리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그렇게 첫 총리직을 3년간 맡았다.

그 이후 정국이 요동치며 협상은 난항을 겪는다. 2000년 제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 봉기)로 폭력 사태가 격화해 이스라엘은 2005년 가자지구에서 철수하고 서안에 분리 장벽을 세운다. 하마스는 2006년 총선에서 승리해 이듬해 가자지구를 장악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2009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유대인 정착촌 확대·복잡한 정치 상황에 실현 ‘요원’… 지지도 ↓

네타냐후 총리의 재집권 뒤 상황은 더 꼬이고 만다. 그는 서안에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면서 두 국가 해법 힘 빼기에 나섰다. 서안 정착촌에 사는 이스라엘인은 44만여명으로, 오슬로협정 체결 이후 4배가량 늘었다.

지난 4일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요르단강 서안 헤브론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건물 장악과 토지 몰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며 이스라엘 군인과 대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는 엄연히 국제법상 불법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정착촌 건설을 멈추지 않는 건 국제사회가 손을 놓고 있어서다. 이스라엘은 “정착촌은 일시적인 것”이라 둘러대지만 주택 건설과 인프라 구축에 수십년간 수천억원을 투자했다. 일례로 오라닛이란 정착촌은 텔아비브와 고속도로로 30분 거리인 베드타운으로 성장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미래의 국가 수도로 여기는 동예루살렘 상황도 심각하다. 이곳에도 이스라엘인 20만여명이 사는 정착촌이 들어서 있다. 이 때문에 두 국가 해법이 실현되더라도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수도로 삼기는커녕 서안의 북쪽과 남쪽을 연결하기조차 어렵게 됐다.

PA는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동예루살렘에 대해선 아무런 권한이 없어서다.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기댈 곳이 없다.

상황 악화엔 팔레스타인 내분과 지도부의 무능, 부패도 한몫했다. PA를 주도하는 파타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지만 하마스가 이스라엘과 타협을 거부해 양측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5년 시한의 과도정부였던 PA는 공공 부문 급여 지급, 이스라엘과 경비 협조 업무만 수행 중이다. 지금까지 PA에 미국이 지원한 금액만 50억달러(약 5조5825억원)가 넘지만 가자지구와 서안의 도로, 병원 등 인프라는 개선된 게 없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수반. AP연합뉴스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팔레스타인인 68%는 그가 떠나길 원한다. 2009년 4년 임기가 끝난 뒤 선거 없이 직을 유지해 정통성을 이미 상실했다. 지난달 2006년 이후 15년 만에 총선을 치르기로 돼 있었지만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에서 투표 진행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돌연 연기했다.

미국은 중재자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팔 평화 협상은 2014년 미국의 중재가 실패한 뒤 중단된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등 노골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었다. 협상이 중단된 뒤 이스라엘 정치권에선 우파가 득세하며 두 국가 해법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결과 두 국가 해법은 이스라엘인은 물론 팔레스타인인들에게도 외면을 당하고 있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지지도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경우 2016년 53%에서 지난해 42%로, 같은 기간 이스라엘 아랍인(이스라엘 시민권자인 팔레스타인인)은 82%에서 59%로 떨어졌다. 팔레스타인인의 경우도 2016년 51%에서 올해 40%로 줄었다.

지난달 30일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요르단강 서안 베들레헴에서 한 여성이 이스라엘 분리 장벽 옆을 지나가고 있다. 장벽엔 미국 백인 우월주의 단체 쿠클럭스클랜(KKK)의 흰 두건을 쓴 이스라엘 군인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 국가 해법’ 주장도… “두 국가 해법이 유일한 해법”

이 같은 이유로 두 국가 해법은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팔 평화 협상의 문제는 과정의 부족이 아니라 그 과정이 평화를 대신하게 됐다는 데 있다”며 “이제는 영토와 평화의 교환이란 패러다임 실패를 인정할 때”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한 국가 해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서안을 하나의 민주국가로 합쳐 유대인과 아랍인이 동등한 권리를 갖게 하자는 것이다. 영국 외교관 니컬러스 웨스트콧은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를 통해 “현 폭력 사태의 비극은 네타냐후와 하마스에 단기적으로 정치적 이익이 된다”며 “평화는 이·팔 단일 국가 내에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국가 해법의 맹점은 두 국가 해법보다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데 있다. 이스라엘 건국으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과 후손들이 돌아오면 아랍인 수는 유대인보다 많아진다. 이는 이스라엘 건국 이념인 시오니즘의 종말을 뜻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예루살렘=AP연합뉴스

놈 촘스키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이스라엘이 유대인이 소수인 팔레스타인 국가를 위해 사라지는 것에 동의할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평화 협상에 참여했던 치피 리브니 전 이스라엘 외무장관도 “하마스와의 폭력 사태는 한 국가가 어떤 모습일지 보여줬다”며 “두 국가 해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협상 재개를 위해 양측의 정치적 결단과 적대감 극복, 영토와 평화의 교환이란 패러다임 전환 등이 과제로 꼽힌다. 협상 테이블에 앉을 팔레스타인의 새 지도부도 필요하다.

최근 이스라엘에서 반네타냐후 연정이 구성돼 팔레스타인 정책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전망은 어둡다. 뉴욕타임스는 “(차기 총리로 유력한) 나프탈리 베네트는 팔레스타인 주권국가 개념을 거부하고 서안 합병을 주장해왔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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