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세계와우리] 한·일 관계, 정책은 없고 정치만 남다

관련이슈 세계와 우리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1-05-13 23:19:54 수정 : 2021-05-13 23:19:5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위안부·강제 징용 등 현안 갈등
지난 4년간 양국 관계 최악 수준
정권말 신뢰 회복 의지-동력 중요
‘보여주기식’ 지양… 개선 노력 필요

격변의 한국 정치사를 재차 언급하지 않더라도 4년 전 문재인정부의 등장은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었다. 잘못된 정치를 꾸짖는 시민의식은 밝게 빛났고, ‘공정·정의·평등’을 내세운 새로운 정부의 시작은 뭉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난 4년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시기였다. ‘내로남불’의 전형을 보여준 인사 문제와 부동산 문제 등 국내 문제는 물론이고 외교, 그중에서도 특히 현재의 한·일 관계는 처참한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악의 최악을 거듭한다는 한·일 관계 속에서 정부의 고심도 깊었을 것이다. 한·일 관계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법부 판단에서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았고, 수출규제 문제에 대응하며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카드로 맞섰지만, 이는 역사 문제(‘강제징용 문제’)를 경제 문제(‘수출규제 문제’)로 가져온 일본과 다름없었다. 갈등이 장기화되며 상호 이해와 신뢰는 낮아지고, 악화된 국민감정은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중 어느 하나도 단기간에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일 갈등 현안이 쌓여가던 시기 속에서도 201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을 준비하며 관계 전환의 계기로 삼으려던 노력이 있었고, 코로나19 위기 속 교류가 감소하는 가운데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활로를 찾아가려는 노력이 있었으며, 한·일 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사회 각층의 노력이 잇따랐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노력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어쩌면 이러한 결과는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재인정부에서 심혈을 기울였던 대북정책에서 일본의 역할은 미미하였고, 지역구상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신북방정책, 신남방정책, 동북아평화협력플랫폼 어디에서도 일본의 위치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게 지리적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일본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간과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가운데 반일을 선동하는 책임 있는 당국자들의 경솔한 발언은 민감한 한·일 관계를 정치화시켰다. 정책은 사라지고 정치만 남은 형국이다.

이제 문재인정부에서 한·일 관계 개선은 쉽지 않다는 말들이 이제 공공연히 나온다. 정권말 지지율은 하향곡선을 그리며, 1년도 남지 않은 대선 국면에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추동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아베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태로 아베 내각의 남은 임기를 받은 스가 내각이 과도기적 성격을 딛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코로나19 확산 속 도쿄올림픽 개최를 강행하며 지지율이 하락하는 가운데 한·일 관계 개선을 우선순위에 올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결국 양국의 국내정치 일정을 고려하고, 특정한 계기·의지·동력, 무엇하나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한·일 관계 전망은 밝지 않다.

그렇다고 지금보다 더 악화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남은 1년을 그대로 보내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다음 정권에 큰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음 정부는 당장 2023년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로 일본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위안부 소송은 끝나지 않았고, 강제징용 문제 현금화는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조급한 관계 개선 시도나 ‘보여주기식’ 이벤트 기획은 지양해야 한다. 충분한 설명 없는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는 오히려 진의를 의심받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닥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 관계 개선을 위해 진심을 다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단기·중장기 차원의 과제를 설정하며, 고착화된 갈등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치’가 아닌 ‘정책’이 필요한 순간이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지금 이 순간도 과거가 된다. 남은 1년, 문재인정부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리고 어떠한 정부로 기억될 것인가.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