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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알 권리 충족·범죄예방 효과… ‘특강법’ 근거 26명 공개 [뉴스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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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5-08 15:00:00 수정 : 2021-05-09 10: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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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 신상공개 이유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신상공개 관행
밀양 여중생 성폭행 미성년 가해자 공개
인권침해 논란… 이후 피의자 노출 최소화
2009년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국민 공분
2010년 흉악범 공개 규정한 ‘특강법’ 시행

‘박사방’ 조주빈 공범 강훈, 19세로 최연소
전 남편 살해 고유정, 머리카락으로 가려
공개 결정에도 얼굴은 제대로 노출 안돼
세 모녀 살해 김태현, 마스크 스스로 벗어
일각선 “신상공개 기준 모호하다” 지적도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 연합뉴스
‘김태현. 남성. 1996년생.’ 지난달 5일 경찰이 공개한 김태현(25)의 신상정보다. 김태현은 지난 3월25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의 잔혹성이 알려지며 신상 공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경찰이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거쳐 신상을 공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엄중한 상황이었지만 김태현은 언론의 포토라인에서 마스크를 벗고 맨 얼굴을 공개하기도 했다. 김태현사건처럼 강력사건이 터지면 피의자 신상정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다. 경찰은 이 같은 여론을 고려해 심의를 거쳐 피의자의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겠다는 취지에서다. 관련 법이 시행되고 지금까지 신상 공개가 결정된 피의자는 26명에 이른다.

 

◆‘특강법’ 근거로 신상 공개

7일 경찰 등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강력사건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관행처럼 여겨졌다. 피의자 신상 공개로 재범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 동종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이 같은 인식도 바뀌기 시작한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가해자들의 신상이 공개되자 이들에 대한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이후에는 경찰이 피의자를 연행하는 과정에서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자나 마스크를 씌우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이 다시 바뀐 것은 2009년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강호순이 세상에 알려지면서다. 당시 강호순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높아지자 한 언론사가 강호순의 신상을 공개했다. 이듬해에는 이 같은 흐름에 편승해 경찰도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범 김길태의 신상정보를 직접 알렸다.

강호순. 뉴시스

2010년에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2010년 4월 시행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은 범행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사건에서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볼 증거가 충분하다면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다만 피의자의 신상 공개가 재범을 방지하고 유사한 범죄를 예방하는 등 공공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 피의자가 청소년인 경우에는 제외된다.

특강법 시행 이후 그해 6월 김수철의 신상이 공개됐다. 당시 경찰은 서울 영등포구 한 초등학교에서 여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김수철의 얼굴 사진을 직접 찍어 공개했다. 이후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납치 살해한 오원춘(2012년 4월)과 대구에서 여대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조명훈(2013년 6월), 수원 팔달산에서 토막살인을 저지른 박춘풍(2014년 11월) 등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강훈. 연합뉴스

◆미성년자 강훈, 머리카락 내린 고유정

2010년 특강법 시행 후 신상 공개가 가장 많았던 해는 지난해다. 총 6명이 공개됐는데, 이들 중 3명이 이른바 ‘박사방’과 ‘n번방’ 사건의 조주빈, 강훈, 문형욱이다. 연쇄살인을 저지른 최신종과 한강 몸통시신 사건의 장대호, 용인 토막살인 사건의 유동수도 공개됐다.

박사방 개설자 조주빈의 공범인 강훈은 최연소로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신상이 공개될 당시 강훈의 나이는 만 19세였다. 특강법상 미성년자는 신상 공개를 제한하기 때문에 당시 경찰 심의위도 이 문제를 두고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청소년보호법이 만 19세 ‘미만’을 대상으로 삼아 신상 공개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강훈은 신상 공개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법원 역시 “공공의 정보에 관한 이익이 강훈의 명예, 미성년자인 강훈의 장래 등 사익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하므로 신상 공개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고유정. 뉴시스

신상 공개가 결정됐는데도 언론에 얼굴이 제대로 노출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2019년 6월 제주에서 전남편을 살해한 고유정이다. 고유정은 범행 전후의 폐쇄회로(CC)TV 장면을 통해 얼굴이 알려졌지만, 호송 과정에서는 긴 머리카락을 내려뜨리는 방식으로 얼굴을 가렸다.

김태현의 경우 코로나19 사태로 마스크를 벗는지가 관심사였다. 아무리 피의자라도 코로나19 방역이 엄중한 상황에서 마스크를 강제로 벗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 경찰 입장이었다. 당시 경찰은 김태현에게 ‘마스크 착용 여부를 직접 결정하라’고 전달했는데, 김태현은 포토라인에서 마스크를 스스로 벗었다.

 

일각에서는 신상 공개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력 범죄라도 개개인이 잔혹성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신상 공개를 정하는 수사기관에도 심의 대상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고, 모든 강력사건이 심의를 거치는 것도 아니다. 사실상 수사기관이 신상 공개의 필요성을 느낄 때 심의위를 열어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식이다. 범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의 정도, 잔혹성 등 ‘정성적 평가’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실제 최근 신상 공개가 결정된 김태현의 경우에도 심의위는 “신상 공개 관련 국민청원이 접수되는 등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임을 고려했다”고 이유를 들었다.

 

권구성·김병관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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