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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중동정세에 유가 껑충
근거도 명분도 없이 세금 추진
美·英선 실패로 끝나 없던 일로
더 촘촘한 논리 내세워 추진을

지금 한국인 최대 관심사는 물가다. 물가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품목이 기름값이다. 유럽이 조금 잠잠해지니 중동 정세가 불안해져 국제 유가가 또 흔들렸다. 유가 불안이 인플레이션을 오버슈팅할 우려가 커진 것이다.

한국 물가는 중동산 두바이유 영향을 받는다. 이란 제재와 국내 정유사 원유수입 다변화 노력으로 수입 비중이 내려오고 있지만 여전히 두바이유 비중이 70%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그래서 휘발유값 등이 이 기름의 가격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다.

나기천 산업부장

한국 소비자물가지수에서 휘발유의 가중치는 전세, 월세, 통신비에 이어 4위다(2022년). 경유는 7위다. 이게 다가 아니다. 전기료(8위), 도시가스(12위) 등 주거용 에너지도 유가의 영향을 받는다. 유가가 오르면 기업 생산비용도 오른다. 기업의 증가한 생산비용은 비석유제품 가격으로 전가되며 물가 전반을 자극하는 흐름인 것이다.

기름값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큰 건 사실이지만 세금 제외 한국 휘발유 가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국 중 최저 수준(2023년)이라는 것을 아는 국민은 많지 않다. 국내 정유업계가 세계 5위 규모의 정제능력을 갖춰 제품을 안정적으로 내수시장에 공급하여 가격 안정화에 기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정유사에 ‘횡재세’를 걷자는 주장이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야당 쪽에서 나온 말이다. 21대 국회에서도 일부 그런 논의가 있었지만 흐지부지되어 없어진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4·10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압승한 야당 쪽에서 다시 그 이야기가 나왔다.

유가 상승기마다 횡재세가 논란이다. 정유업계 실적이 개선되면 마치 아무런 노력도 없이 불로소득을 얻은 것처럼 주장하며 고유가 고통의 원인과 책임을 전가하는 이들이 있어서다.

실상은 코로나19 당시 유가 급락과 수요 급감으로 5조원대 적자를 기록했듯 국내 정유 산업은 외부환경 변화에 따른 변동성이 매우 큰 산업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국내외 전문가는 석유화학 업계에 대한 횡재세 부과를 ‘실수’라고 질타한다.

영국의 석유 메이저 BP는 횡재세를 부과받자 북해 유전 지분을 미국 쉐브론에 팔아버렸다. 횡재세가 가뜩이나 탈탄소 기조 속 위축 중인 영국 석유산업 쇠퇴에 쐐기를 박은 꼴이다. 미국도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있다. 1980년 오일쇼크 당시 유가가 치솟자 미국 정부가 석유 기업에 횡재세를 과세했다. 그랬더니 석유제품 수입이 늘어났고, 결과적으로 자국 석유산업 약화를 부르자 곧 폐지했다.

한국은 왜 지금 같은 실수를 하려는 것일까. 코로나19 때 국민지원 재원을 마련하려고 영국과 일부 유럽 국가에 횡재세가 도입됐다. 이때 대표 화석연료인 석유가 기후위기에 끼친 악영향에 대한 회초리 차원이라는 명분이 붙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전쟁 덕에 오른 가격에 막대한 이익을 낸 석유화학 기업이 ‘한시적’으로 희생하는 모양새도 필요했다.

한국의 지금은 이런 명분과 ‘쇼잉’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과세는 산업 전반에 적용 가능한 일관된 기준과 요건에 대한 법적 검토부터 해야 하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다. 특정 업종을 차별해 따로 과세해야 한다면 그 논리가 더 촘촘해야 한다. 대한민국 근간인 자유시장 경제체제에 역행하는 포퓰리즘적 성격이 가미되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한국 정유 산업은 박리다매 저마진 구조다. 2007년 이후 17년간 정유업계의 정유 부문 평균 영업이익률은 1.8%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국내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은 6.5%였다.

한국에 정유 4사가 있다. 이 중 3개사에 아람코(61%), 쉐브론(50%, 17%) 등 외국 기업이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횡재세 같은 근거도 명분도 없는 압박에 이들이 떠나면 어떻게 되나. 야당은 먼저 “횡재에 대한 법률적 개념이 모호한 상태에서 특정 업종의 영업이익에 대해서만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에 맞지 않는다” “경영실적 중 과세대상 초과이익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제시가 필요하다”는 국회 입법조사처의 지난해 문제 제기부터 곱씹어 보기 바란다.


나기천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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