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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이케부쿠로 폭주사건의 진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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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0-21 23:39:30 수정 : 2021-10-21 23: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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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한 사고였다. 2019년 4월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이즈카 고지(당시 88세)는 신호등이 바뀌는 순간 시속 90㎞로 횡단보도로 돌진했다. 사망자 2명을 포함해 11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사망자는 마쓰나가 마나(〃 31세)와 리코(〃 3세) 모녀. 마쓰나가 다쿠야의 아내와 딸이었다.

면허 자진반납 등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고령 운전자에 의한 대형사고에 놀란 일본 국민들은 사고 후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이즈카가 보인 태도에 분노했다. 그는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착각하지 않았다. 차량 결함에 의한 사고였다”고 강변하며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했다.

강구열 국제부 차장

이런 사실이 보도되며 곳곳에서 이즈카에 대한 분노가 터져나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상급국민(上級國民·특권층) 할아버지” 등 비아냥과 “꺼져라”라는 비난이 넘쳐났다. 그의 집 주변에서 “일본 국민의 수치”라는 등 욕설을 퍼붓는 이들도 있었다. 법원 판결은 지난달 나왔다. 금고 5년. 그때서야 이즈카는 자신의 과실을 인정했다.

그런데 지난 19일 산케이신문의 이 판결 관련 보도를 보면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금고 7년의 검찰 구형을 받은 법원이 금고 5년을 선고하며 “피고인(이즈카) 측에 유리하게 고려해야 할 사정의 하나”로 ‘과도한 사회적 제재’를 들었다는 점이다. 이즈카를 향한 분노에서 비롯된 온갖 비난이 사적 제재의 성격을 띠었다고 봐 감경 사유로 든 것이다.

법원의 판단 자체도 흥미롭지만 놀라운 지점은 아내와 딸을 잃은 마쓰나가의 반응이었다. 사고 후 “생지옥을 살고 있다”고 했던 그는 “양형이 줄었다는 것이 슬프다”면서도 이런 사고를 보다 차분하게 다루며 근본적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신문이 전한 마쓰나가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이즈카 개인에 대한 비판에만 관심이 쏠리면서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고 재발 방지책을 세우는 논의로 연결되지 못한 것 같다. 이즈카에 대한 협박 같은 건 바라지 않았다. 누구나 교통사고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가해자를 공격한다고 사고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가장 큰 분노의 당사자인 그가 자신이 겪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며 냉정한 사회적 논의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울림이 깊다.

법원은 ‘과했다’고 판단했으나 이즈카를 향했던 비판, 비난처럼 정의감에서 비롯된 분노를 마냥 나무랄 일인가는 싶다. 잘못에 대해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데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서도 종종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 이상의 건전한 논의를 찾기 힘든 사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분노와 응징은 잘못을 저지른 이에게 집중된다. 통쾌함은 극대화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리고 유튜브라도 검색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분노의 배설에 다름 아닌 콘텐츠들은 넘쳐난다. 남는 건 잘못과 분노의 악순환뿐이다.

마쓰나가의 말을 곱씹어 본다.

“사고의 비참함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재발 방지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재판에 임했다.”


강구열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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