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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전선으로 전력분산… 美 역사상 ‘가장 긴 전쟁’ 수렁 [9·11 테러 2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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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9-11 17:00:00 수정 : 2021-09-11 17: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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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본 ‘테러와의 전쟁’

빈 라덴 인도 거부한 아프간 전격 응징
탈레반 몰아내고 친미 과도정부 수립
대량살상무기 의심 이라크까지 침공

철군선언 넉달 만에 다시 ‘탈레반 천하’
알카에다 등 테러집단 은신처로 변모
결국 과거로 ‘도돌이표’… 美 조야 탄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미 언론은 이를 ‘미 역사상 가장 길었던 전쟁의 끝’이라고 묘사했다. 2001년 시작한 아프간 전쟁이 아직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한 표현이다. 18세기 말 영국과의 독립전쟁부터 1960∼1970년대 베트남 전쟁까지 미국이 20년간 안 쉬고 싸운 전쟁은 없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하지만 그렇게 기나긴 전쟁은 단 4개월 만에 결판이 나고 말았다. 바이든의 철군 선언 직후부터 아프간 정부군을 거세게 몰아붙인 탈레반은 급기야 지난달 15일 수도 카불에 깃발을 꽂았다. 친미 성향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사실상 ‘무조건 항복’ 의사를 밝힌 뒤 외국으로 도피했다. 미 조야에서 “20년간 들인 공이 한순간 무너졌다”는 탄식이 쏟아진 이유다. 이제 아프간은 탈레반의 1차 집권기(1996∼2001)와 비슷한 ‘암흑’으로 돌아가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 선포한 미국

9·11 테러로 알카에다한테 일격을 당한 미국이 아프간을 전격 침공하기까진 1개월이 채 안 걸렸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간에 은신하고 있다는 미 정보당국의 판단이 전쟁 개시의 결정적 근거가 됐다. 평소 알카에다에 호의적이던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은 “빈 라덴 신병을 인도하라”는 미국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고, 그런 아프간을 ‘응징’하는 미군의 활약에 미국인들도 커다란 지지를 보냈다.

싸움은 의외로 싱겁게 끝나는 듯했다. 원시적인 무장만 갖춘 탈레반은 미군이 동원한 최첨단 무기 앞에 상대가 되질 않았다. 손쉽게 카불을 점령한 미군은 2001년 12월 5일 아프간에 친미 성향의 과도정부를 수립했다. 다만 가장 중요한 목표였던 빈 라덴 검거는 이루지 못했다. 그는 미군 추격을 피해 파키스탄으로 넘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핵무기 보유국 파키스탄은 미국도 어쩔 수 없는 까다로운 상대였고, 이후 아프간에 남은 미군은 탈레반 잔당의 간헐적 기습 속에서 ‘아프간 민주정권 수립’과 ‘빈 라덴 제거’라는 두 가지 과제 완수에 나선다.

지난 7일(현지시간) 탈레반 대원들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서 진행된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카불(아프가니스탄)=AP/뉴시스

◆아프간 다음 표적은 이라크

아프간을 예상보다 쉽게 ‘평정’했다고 여긴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다음 과녁을 조준하고 나섰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통치하는 이라크였다. 미국이 탈레반 등을 상대로 선포한 ‘테러와의 전쟁’이란 대의명분에 비춰보면 이라크는 딱 들어맞는 표적은 아니었다. 그런데 미 정보당국은 “이라크가 보유 중인 대량살상무기(WMD)가 테러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백악관에 전달했다. 아프간에서의 성공에 흥분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도 거들었다. 결국 부시 정부는 칼을 빼들기로 결심한다.

2003년 3월 미군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걸프전쟁(1990∼1991)에 이은 20년 만의 재공격이었다. 한 달도 안 돼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한 미군은 7월 이라크에 친미 성향의 과도정부를 세웠다. 그해 12월 달아난 후세인마저 미군에 전격 체포되며 부시의 기쁨은 극에 달했다.

 

그 사이 아프간에선 반전이 일어났다. 미군이 이라크 전쟁에 집중하는 동안 탈레반 잔당이 도로 세를 규합하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럼즈펠드가 89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 미 언론은 “미군의 힘을 아프간과 이라크에 분산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미국을 아프간 전쟁 장기화라는 수렁에 빠뜨린 장본인”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힘의 분산 속에 수렁 빠지다

올해 4월부터 본격화한 탈레반의 공세 앞에 아프간 정부군은 힘 한 번 못 써보고 무너졌다. 4개월 만인 8월 15일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은 아프간의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강요하는 탈레반이 두려워 여성들은 거의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와 니캅을 다시 착용하기 시작했다. 성인 여성들은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났고, 소녀들은 학교 교육에서 소외돼 가고 있다. 과거 아프간 정부에서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임신한 여성 경찰관이 총살을 당하는 끔찍한 일도 벌어졌다.

탈레반 치하에선 도저히 살 수 없는 아프간인들은 이제 난민이 되어 세계를 떠돈다. 아프간은 알카에다, ‘이슬람국가 호라산’(IS-K) 같은 온갖 테러 집단의 은신처로 변해가는 중이다. 20년 전 미국이 “테러 근절”을 외치며 아프간을 침공한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미국의 최대 근심거리는 아프간을 근거지 삼은 알카에다의 부활이다.

국제사회는 미국을 불신하는 분위기다. “글로벌 리더를 자처하더니 정작 리더십이 필요할 때 왜 안 보이느냐”는 것이다. 아프간과 달리 이라크는 미국의 동맹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란 등 주변 반미 국가들의 위협 속에 이라크의 입지는 여전히 취약하기만 하다. 아프간이 9·11 이전으로 돌아간 지금 세계는 이라크의 앞날을 주목하고 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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