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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크레인’ 내몰린 노동자들… 왜? [이슈+]

입력 : 2021-05-11 20:01:02 수정 : 2021-05-11 2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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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공사장 60대 주모씨 추락사로 본 건설현장
하청업체 크레인 사용료 부담에
추가로 철근 옮기는 일 사람에 맡겨
가설물서 안전장치 없이 작업 ‘참변’
“중대재해법 있지만 현장 안 변해”
하청업체선 “철근 옮긴 건 맞지만
주씨는 작업 대기 중 추락” 주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5년. 주모(64)씨가 공사장으로 출근한 기간이다. 건설노동자로 일했던 그는 매일 아침 공사장에 나가면서 달력의 숫자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월급이 아닌 일당을 받는 그만의 수입 계산법이었다. 동그라미가 없는 날은 비가 온 날 뿐이었다. 몇 개월짜리 단기 계약을 하는 그에게 주 52시간 근무제는 먼 얘기였다. 까만 숫자와 빨간 숫자를 가리지 않고 착실히 그려지던 동그라미는 지난 2일 멈췄다. 그가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한 공사현장에서 숨진 날이다. 마지막 동그라미를 그렸던 그날 역시 일요일이었다.

11일 유족과 경찰 등에 따르면 주씨는 사고 당시 3m 높이의 비계(공사를 위한 임시 가설물)에서 추락했다.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받아치기’ 작업이 이뤄지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받아치기는 노동자들이 직접 땅에 있던 철근을 위층으로 옮기는 작업을 칭하는 용어다. 크레인 사용이 보편적이지 않던 1980년대 이전에 많이 사용됐던 방식이다. 크레인이 있는데도 노동자들이 받아치기 작업을 하는 이유는 비용 절감 때문이다. 통상 크레인 사용에는 회당 50만∼70만원이 들어가고 1회에 1∼2시간을 사용한다. 이후 추가로 철근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비용 절감을 위해 사람이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과거 주씨와 다른 공사현장에서 함께 일했던 A씨는 “받아치기는 사람이 크레인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크레인을 쓸 때는 철근을 몇 톤씩 올리지만, 작업량이 남아 야간작업을 할 때는 철근을 크레인 대신 사람이 올리곤 한다”고 설명했다. 주씨의 과거 동료 B씨도 “크레인은 비싸니까 제시간에 퇴근시키고, 그다음엔 노동자들이 손으로 철근을 들어올린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작업은 주로 외국인이 맡는다. 주씨 역시 중국 국적이다. B씨는 “돈 벌려고 한국에 왔으니까 시키는 대로 다 할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제일 위험하고 힘든 일은 외국인이 다 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용산구의 한 공사현장에서 작업 중인 크레인의 모습. 연합뉴스

하청업체 측도 받아치기 작업이 있었던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현장에 있던 업체 관계자는 “크레인 작업은 1주일 전에 끝났는데 일하다 보니 철근 대여섯 가닥이 모자라 (작업자들이) 1층에서 손으로 한 가닥씩 올려주려고 했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아래에서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주씨는 2층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갑자기 추락했다”면서 주씨가 작업 중 사망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주씨에게 제대로 된 안전장치가 있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조사 결과 주씨는 사고 당시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를 착용하지 않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초과 노동도 일상이었다. 주씨는 사망 당일 오전 6시에 출근했고, 오후 5시15분쯤 사고를 당했다. 이미 퇴근 시간(오후 4시)을 넘긴 시간이었다. 주씨의 딸은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신 건지 알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경찰은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산업현장에서 ‘위험의 외주화’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일하다 다치고 죽는 일을 없애려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사람 안전이나 생명은 뒷전이고 돈이 우선인 현장 풍토는 변하지 않았다”며 “하청업체는 원청이 주는 시간과 가격 안에서 일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실상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조희연·유지혜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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