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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미국이 증오범죄를 대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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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11 23:07:48 수정 : 2021-04-11 23: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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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후 反아시안 범죄 급증
방지법 개정안 등 추진하지만
인종차별 여전… 대응은 걸음마
타국 인권문제 언급 자격 있나

“증오범죄 보고 기관에 인센티브를 주고, 연방정부 핫라인 보고 체계를 제공하며, 증오범죄 혐의로 기소된 개인을 가중처벌하자.”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법사위에 소개된 증오범죄 관련 법안(H.R.2383)의 주요 내용이다. 돈 바이어 하원의원(버지니아)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민주당 의원 11명, 공화당 의원 12명 등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다. 한국계 앤디 김 하원의원이 동참했고 다른 한국계 의원 3명도 곧 서명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아시아계 증오범죄가 급증하면서 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이번 법안을 보면 미국 사회가 증오범죄에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재영 워싱턴 특파원

이번 법안은 ‘매슈 셰퍼드 및 제임스 버드 주니어 증오범죄 방지법’(HCPA)에 대한 보완 내지 개정 작업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흑인인 제임스 버드 주니어(당시 49세)는 1998년 6월 텍사스 재스퍼에서 3명의 백인 우월주의자에게 살해됐다. 범인들은 제임스를 구타하고 트럭에 매달아 3마일을 달렸다. 숨진 제임스를 흑인 공동묘지에 버리고 도주했다가 붙잡혔다. 범인 2명은 사형됐고, 범행을 반성한 1명은 무기징역 복역 중이다. 같은 해 10월 와이오밍 대학생 매슈 셰퍼드(당시 21세)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이틀간 납치돼 고문당한 뒤 며칠 만에 숨졌다. 범인 2명은 무기징역을 살고 있다.

이처럼 끔찍한 증오범죄에도 그해 11월 여론조사에서 증오범죄 방지법 제정에 찬성한 미국인은 56%였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9년 1월 국정연설에서 증오범죄 방지법 통과를 우선순위에 두겠다고 했지만, 입법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미 상원은 2007년 9월 60대 39로 사상 처음 증오범죄 방지 대상에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8년 11월 대통령직 인수팀이 증오범죄 방지 대상을 성소수자로 확대하겠다고 밝혔고, 2009년 10월 제임스와 매슈의 이름을 딴 증오범죄 방지법이 제정됐다. 둘의 희생 후 11년 만이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나 발의된 이번 법안을 보자. 증오범죄를 보고하는 기관에 혜택을 주고 핫라인을 만들겠다는 것은 여전히 범죄 보고가 부실하다는 방증이다. 미 법무부는 연방수사국(FBI)의 ‘증오범죄 통계프로그램’(HCSP)과 법무통계국(BJS)의 ‘국가범죄피해조사’(NCVS)를 통해 각각 증오범죄 정보를 모은다. 지역 수사기관으로부터 정보를 받는 FBI가 공개한 2019년 증오범죄는 7314건인데, 자체 평가에 나서는 BJS는 연평균 20만4600건의 증오범죄가 발생한다고 했다. 축소 보고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 대상 증오범죄 대응은 걸음마 수준이다. 상·하원에 증오범죄 위원회를 설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H.R.1834)에 140여명의 의원이 서명했는데, 법안 마련 배경 17가지 가운데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언급은 고작 14번째다. 법안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 대상 증오범죄가 증가했다”며 지난해 3∼12월 아시아·태평양계(AAPI)에 대한 증오범죄가 2808건 발생했다고 밝혔다.

다음달 1일 텍사스주 6선거구 하원의원 보궐선거에 도전장을 낸 한국계 세리 김 후보(공화당)는 최근 경선 토론회에서 “중국은 우리 지식재산권을 훔치고 코로나를 줬으면서도 책임지지 않는다”며 중국 이민자가 미국에 있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아시아계 차별은 전에도 있었지만 최근 언론이 이를 부각하고 있다고도 했다. 어린 시절 가족과 미국에 온 김 후보는 본인이 차별을 겪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국장을 지낸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트위터에 “뉴욕에서 태어나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을 대변해왔지만 지금도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는 인종차별적 욕설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백했다.

얼마 전 자전거를 타러 간 남매가 처음 보는 또래 아이 3명에게 “코로나바이러스를 갖고 돌아가라”는 등 험악한 말을 듣고 왔다. 미국은 과연 다른 나라의 인권 문제를 언급할 자격이 있을까.

 

정재영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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