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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봄 가수 양희은이 난소암에 걸렸다. 서른 살인 그녀에게 3개월의 시한부 선고가 내려졌다. 그녀가 입원한 병실 바깥에는 하얀 목련이 피어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편지를 보내왔다. “너와 똑같은 병을 앓다 숨진 어떤 여자의 장례식에 다녀오는 길이다. 공원에 목련이 툭툭 지고 있어.” 편지를 읽은 양희은이 펜을 들어 종이에 쓰기 시작했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이렇게 해서 탄생한 노래가 양희은의 ‘하얀 목련’이다.

비운의 퍼스트레이디 육영수 여사의 상징은 목련이다. 시인 박목월은 육 여사를 하얀 목련에 비유했고 모윤숙은 ‘목련꽃 닮은 당신’으로 칭했다. 항상 단아함을 잃지 않는 자태에서 나온 은유였다. 한센인, 소년소녀 가장 등 가장 낮은 이들의 슬픔을 어루만진 육 여사의 모습에서 목련의 기품을 떠올리는 국민도 적지 않았다. 육 여사는 목련을 매우 좋아했다. 1965년 육 여사는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린든 존슨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동안 백악관 남쪽의 엘립스 공원에 목련을 심었다. 목련은 육 여사의 죽음과도 동행했다. 문세광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자 남편 박정희는 “백목련처럼 청아한 기품 이제는 잊어버리려고”라는 시를 지어 아내의 영전에 바쳤다.

4·7 재보선 서울시장 선거에서 완패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어제 SNS에 시를 올렸다. “목련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피었다 지는 것이 목련뿐이랴. 기쁨으로 피어나 눈물로 지는 것이 어디 목련뿐이랴.” 광주의 아픔을 그린 박용주의 ‘목련이 진들’이라는 시다. 성찰의 시간을 가진 뒤 새봄에 목련으로 다시 피어나겠다는 다짐이었다.

목련의 꽃말은 ‘고귀함’과 ‘부활’이다. 꽃말이 두 개지만 실은 한 개나 마찬가지다. 부활은 이전보다 고귀한 존재로 태어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암을 이긴 양희은은 국민가수로 거듭났고, 육영수는 죽어서 최고의 퍼스트레이디로 되살아났다. 박용주가 노래한 광주의 목련은 고귀한 민주화 열매를 맺었다. 패장 박영선의 부활은 어떤 모습일까. ‘페라가모 호소인’ 같은 거짓으로는 백년하청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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