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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칼럼] 민주주의 역행하는 ‘여론조사 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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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3-21 23:07:06 수정 : 2021-03-21 2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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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선 ‘野 단일화' 놓고 갈등
여론조사 경선 ‘인물 선거' 조장
대표성·역선택 등 문제들 많아
정당정치 퇴보 무책임한 선택

4·7 재보선 승리를 위한 각 정당의 선거 캠페인이 한창이지만 유권자의 귓가에는 서민경제, 일자리, 복지가 아닌 부동산투기, 무상화폐, 단일화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아직은 모든 경선이 마무리되지 못했지만 정책선거는 실종되고 네거티브 인물선거의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야권의 단일화 여론조사 경선이 미디어를 통한 인물선거를 부추기고 정책을 삼키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여론조사 방식을 둘러싼 갈등은 또다시 여론조사의 가벼움과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번 재보선에서 국민의힘은 예비경선과 본경선의 대부분에서 여론조사를 활용하였고, 민주당도 범여권 후보경선에서 일반시민 여론조사를 일부 반영하였다.

윤종빈 명지대 미래정책센터장 정치학

세계적으로 희귀한 여론조사 경선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정당의 책임성을 훼손한다. 이념의 선명성과 당원 참여보다 표 결집만을 중시하는 ‘포괄정당’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평소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진성당원의 당내 투표권이 존중되지 않는 것은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것이다. 정당의 기본 책무는 당원을 양성하고 정치신인을 발굴하는 것인데, 이를 무시하고 쉬운 길인 여론조사에만 매달리면 책임정당 정치는 실종되고 대의제 민주주의는 퇴보하게 된다.

둘째, 여론조사 경선은 인물 중심의 선거를 조장한다. 여론조사 경선이 불특정 다수의 응답자가 순간적인 후보자 이미지에 의존해 의사 표시하는 점을 이용해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가 난무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지역의 현안과 정책보다는 상대 후보 헐뜯기가 난무하고 미디어에는 인물 중심의 네거티브 캠페인이 부각된다.

셋째, 여론조사 경선은 낮은 응답률로 대표성 문제를 노출한다. 유권자들은 낯선 전화조사원에게 자신의 정치성향 노출을 꺼리고 때로는 여론조사를 가장한 홍보 전화로 오인해 통화를 거절하기 쉽다. 그래서 한 자릿수의 극히 낮은 응답률로 인해 표본을 재조정하고 보정하는 과정에서 자주 왜곡이 발생한다. 이처럼 여론조사 방법론에서도 종종 일부 집단을 배제하고 대표성을 상실하는 것을 무작위 오류로 인정하고 있다.

넷째, 기술적인 차원의 문제로 여론조사는 본질적으로 표본오차와 조사방식에 따른 비표본오차가 존재한다. 만약 오차 범위가 ±4%면 8% 이내의 지지율 격차는 전혀 의미가 없는데도 승자 결정은 강요된다. 이러한 표본오차를 줄이려면 표본 수를 늘려야 하는데 시간적·경제적 이유로 한계가 있다. 또한 경쟁력 혹은 적합도 등 설문 방식에 따라 결과가 뒤바뀔 수 있다.

다섯째, 여론조사는 개방형 경선으로 ‘역선택’의 문제를 안고 있다. 상대 정당의 경쟁력 있는 후보를 탈락시키기 위해 반대 진영에서 조직적으로 참여해 혼란을 주는 여러 사례를 그간 경험하였다.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당원의 참여를 대폭 보장해야 한다. 시간 부족과 편의성을 핑계로 여론조사 경선을 당연시하는 것은 정당의 책임성과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공직선거법(제57조의2)에서 당내 경선을 여론조사로 대체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은 선거공영제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국민 세금으로 정당 운영과 선거 캠페인을 지원하는 것은 풀뿌리정당의 정착을 통한 민주주의 발전을 기대한 것인데, 여론조사 경선은 당원양성과 정당정치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하잔과 라하트는 당내 후보 선택에 관한 ‘당내 민주주의론’(Democracy Within Parties)에서 과도하게 개방적이고 분권적인 정당의 후보 선출 방식은 정당 조직을 약화하고 미디어와 자본 중심의 인물선거를 조장할 우려를 지적한 바 있다. 과거 여론조사 경선의 조작·왜곡 사례를 굳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참고자료에 불과한 여론조사 결과를 후보 결정에 활용하는 것은 선거의 민주성과 대표성을 훼손하는 매우 무책임한 선택이다.

 

윤종빈 명지대 미래정책센터장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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