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러 접경지인 러시아 하산을 경유했다. 북한의 자력갱생을 위한 경협 의지를 드러내는 행보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는 25일 오전 10시40분쯤 두만강 위 철교를 통해 북·러 국경을 넘었다. 열차가 러시아에서 처음 정차한 곳은 접경지역인 하산역이다. 나탈리야 카르포바 하산 의회 의원은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가 북·러 국경을 넘어 하산역에 도착한 소식을 현지 타스통신을 통해 전했다.
김 위원장이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을 따라 열차에서 내렸고,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극동·북극개발 장관, 올렉 코줴먀코 연해주 주지사, 이고리 모르굴로프 외무차관,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주재 대사 등 러시아 측 인사들과 조석철 블라보스토크 주재 북한 총영사 등이 김 위원장을 맞았다.
하산역에 대기하고 있던 전통의상 차림의 러시아 환영단은 김 위원장에게 환영의 뜻으로 쟁반에 담긴 빵과 소금과 꽃다발을 건넸다. 러시아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빵과 소금을 방문객에게 건네는 관습이 있다. 꽃다발을 받은 김 위원장은 하산 역사 안으로 이동했다. 카르포바 의원은 타스통신에 김 위원장에게 꽃다발이 전달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아마 지금 (김 위원장이) ‘김일성의 집’ 박물관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카르포바 의원이 말한 김일성의 집의 정식 명칭은 ‘러시아-조선 우호의 집’이다. 1986년 김일성 주석의 소련 방문을 앞두고 양측 우호를 기념해 하산에 세워졌고,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과거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이곳에서 환영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하산은 북·러 간 정치적 친밀도를 나타내는 장소일 뿐 아니라 북·러 경제협력의 핵심지역이다. 김 위원장이 이번 방문에 하산에서 기착한 것은 러시아와의 경협을 염두에 둔 상징적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2008년 러시아와 나선콘트랜스라는 합작법인을 설립해 긴밀한 경제협력을 진행했지만, 현재는 대북제재 압박으로 사업을 중단한 상황이다. 북한은 하산에서 한국과 시베리아 광산에서 채굴된 석탄을 철도로 나진항까지 수송한 뒤 배를 이용해 포항제철소 등으로 옮기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운영한 적도 있다.
전용열차는 오전 11시40분쯤 하산역을 빠져나와 단선 철로를 따라 연해주 도시 우수리스크 방향으로 향했다. 하산∼우수리스크 간 거리는 260㎞로 통상 7시간이 걸린다. 우수리스크에서 열차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로 접어들어 블라디보스토크 방향으로 틀어 남쪽으로 내려갔다. 김 위원장은 블라디보스토크 도착 후 기차역에서 러시아 측의 영접을 받은 뒤 곧바로 숙소로 예정된 루스키섬의 극동연방대학 내 호텔로 이동했다.
이날 블라디보스토크 역사 주변에는 이른 아침부터 경찰들이 순찰하는 등 보안을 대폭 강화한 분위기였다. 경찰견을 이끌고 역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는 경찰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됐고, 역 앞에는 차량이 들어올 수 없도록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 역 외부에는 국가근위대 산하 특수부대원들을 태운 밴이 주차돼 있고, 경찰들도 시간이 갈수록 증원됐다. 뿐만 아니라 역 주변 가게들이 영업을 중단하고, 근처를 지나는 대중교통 노선도 변경되는 등 김 위원장에 대한 철통 경호 상황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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