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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의 징검다리 된 거북선…바다 속 거북선을 찾아라 [강구열의 문화재 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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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30 14:01:40 수정 : 2019-03-30 14: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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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고고학①> 우리 민족 수호의 상징 '거북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선물한 거북선 모형.

청와대 사랑채에서 특별전 ‘대한민국에 드립니다’가 6월까지 열립니다. 다른 나라 정상에게 받은 선물을 모은 전시회입니다. 약 70점이 실물로 공개된다는데, 가장 눈에 띄는 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선물한 거북선 모형입니다. 역시 이순신 장군은 우리 민족 누구에게나 ‘자랑스러운 할아버지’입니다. 반세기 넘게 적대하고, 갈등한 후손들이 화해와 평화를 모색하는 자리에서 징검다리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거북선 모형은 길이 130㎝, 높이 110㎝, 폭 60㎝의 모형 좌우에 각각 10개의 노와 함께 포·총을 쏠 수 있는 화구가 있다고 합니다. 뱃머리는 용 모양이며, 갑판에는 한자로 거북 ‘귀’(龜)자가 적힌 깃발과 2개의 접이식 돛대가 달렸습니다.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지 사뭇 궁금합니다. 

 

우리가 아는 거북선은 이것말고도 많습니다. 책에서, TV·영화에서 보았고, 이곳저곳에 실물 크기라며 재현해 놓은 제법 있습니다. 김정은의 거북선도 그 중 하나겠죠. 우리가 거북선의 모습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이유일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거북선은 사료조사, 연구를 바탕으로 한 근사치라고 해야 할 겁니다. 전문가들도 조금씩 견해가 다릅니다.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의 정확한 모습, 구조는 알지 못하는 거죠.  

 

거북선의 실제 모습은 어땠을까요? 야심찬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거북선을 찾아 바다 속을 뒤진 겁니다. 일부라도 발견이 된다면 거북선의 실제 모습을 그리는 데 큰 도움이 되겠죠. 그것이 아니더라도 거북선의 흔적을 건져올린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사건이 될 겁니다. 

 

◆바다 속 거북선을 찾아라

 

유력한 후보지는 경남 거제시 하청면 칠천도의 바다입니다. 왜군의 이간질, 조선의 당쟁 등으로 이순신이 고초를 겪는 사이 원균이 조선 수군의 지휘를 맡았고, 칠천량해전(1597년)이 벌어졌습니다. 이 전투에서 거북선, 판옥선 등 150척 안팎의 군선이 파괴됐습니다. 칠천도 바다는 침몰한 거북선이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 되는 거죠.  

 

거북선찾기 프로젝트는 1973년 해군의 주도로 시작됐으나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2007년에는 경상남도가 나섰습니다. 당시 경남도는 칠천도 해역에 탐사전문업체, 전문탐사선과 전문요원을 투입했으나 역시 뚜렷한 성과는 없었습니다. 2008년 탐사에서 임진왜란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물병과 자기 조각 50여 점을 인양했을 뿐입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도 2011년말, 2012년초 칠천도 바다에서 기초적인 수중탐사를 벌이며 거북선 찾기에 나섰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충남 태안 해역에서 발견된 마도3호선.

우리나라 해역에서는 모두 12척의 고선박이 발견됐습니다. 1976년 신안선이 처음이었죠. 대부분이 고려시대의 선박입니다. 잔해 정도밖에 안되는 것도 있지만 바다 속에서 긴 시간을 잘 견뎌 원래의 모습을 상당히 간직한 사례도 있습니다. 물밖으로 아직 건져내진 않았지만 마도3호선의 경우엔 거의 전부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시기가 훨씬 앞서는 고려의 선박들이 이 정도라면 거북선도 기대를 해볼만 한데 거북선은 꽁꽁 숨었는지, 아니면 흔적조차 사라져 버린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명량 해역에서 건져 올린 이순신 함대의 무기

 

거북선은 아니지만 이순신 함대의 흔적으로 보이는 유물이 발굴되기는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물길이 가장 거칠다는 울돌목 인근의 전남 진도군 오류리 바다에서 임진왜란 당시 쓰인 것으로 보이는 총통과 석환(石丸)이 발견됐습니다. 울돌목은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물리쳐 우리나라 해전사에서 가장 빛나는 승리로 꼽히는 명량대첩(1597년)이 벌어진 바다입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명량대첩로 해역’이라고 이름붙인 발굴 지역은 울돌목에서 남동쪽으로 4.2㎞, 전투가 벌어지기 하루 전 조선 수군이 머물렀던 벽파진에서 북서쪽으로 불과 500m 떨어진 곳입니다.

 

명량대첩로 해역에서 발굴한 소소승자총통.
명량대첩로 해역에서 발굴한 석환.

2012년 10월 4일부터 11월 25일까지의 발굴에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총통 3점, 돌로 만든 포탄 4점 등을 건져 올렸습니다. 총통에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萬曆戊子/四月日左營/造小小勝字/重三斤九/兩/匠尹德永(만력무자/사월일좌영/조소소승자/중삼근구/량/장윤덕영)”

 

“만력 무자년 4월에 전라좌수영에서 만든 소소승자총통 무게는 세 근 아홉 냥임. 만든 사람은 장인 윤덕영”이라는 뜻입니다.

 

하나씩 따져보죠. ‘만력 무자’은 명량대첩이 일어나기 9년 전인 1588년입니다. ‘좌영’은 전라좌수영을 이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상좌수영, 경상좌병영 등으로 볼 수 있어 제작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제작시기와 발굴 장소 등을 고려할 때 이순신이 이끈 전라좌수영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소소승자’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은 대표적 소형 화기였던 승자총통의 한 종류를 일컫는 것 같습니다. 승자총통은 선조대에 개발됐습니다. 총구에서 화약과 탄환을 장전하고 손으로 화약선에 불씨를 점화해 철환을 발사했습니다. 16세기 후반 대외적인 위기감으로 개발된 신형 화기로 개인 휴대무기였습니다. 사거리는 최대 700m, 적을 살상할 수 있는 유효사거리는 160m 정도로 파악됩니다. 난중일기에 1592년 6월 2일 벌어진 해전에서 대승자총통, 중승자총통을 사용했다고 기록이 전합니다. 소소승자총통에 대한 문헌 기록은 없으니 유물만 확인된 사례인 거죠. 길이는 대략 57㎝, 무게는 2㎏ 정도로 휴대용으로 적당합니다. 소승자총통이 가늠쇠, 가늠좌, 개머리판이 있어 조준 사격이 가능했던 반면 소소승자총통은 가늠자, 가늠쇠가 없어 기술적으로는 다소 뒤떨어집니다.

 

거북선찾기는 성과가 없으나 이순신의 빛나는 업적은 바다에 간직돼 있습니다. 거북선도 언젠가 벼락처럼 모습을 드러낼 지 모를 일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1976년 신안선 발굴 이후 큰 발전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 수중고고학의 획기적 성과가 될 겁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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