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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변호인 선임됐는데 소송비 물어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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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13 11:08:34 수정 : 2019-03-13 11: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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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서 '소송비 부담' 선고 받은 피고인, "국선변호인인데 무슨 소리?" 헌법소원 / 재판관들, "상급심에 상소하면 될 사안을 왜… 헌법소원 부적법하니 각하" 결정 / '소송비 피고인 부담' 규정한 형소법 186조… 법조계 "권리 남용 막으려면 필요"

A씨는 2017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돼 형사단독 판사의 재판을 받았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못해 따로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은 A씨는 법원이 선임해준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얻었다.

 

증거가 명백한데도 A씨는 막무가내로 혐의를 부인하며 피해자와 목격자를 잇따라 증인으로 신청하는 등 재판 절차를 지연시켰다. 이에 담당 판사는 2017년 12월 A씨의 유죄를 인정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며 “소송비용은 A씨가 부담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 대목에서 ‘국선변호인은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피고인을 위해 나라가 공짜로 선임해주는 것인데 소송비용을 부담하라니, 무슨 소리인가’ 하고 의아해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소송비용은 피고인 몫" 형소법 186조 아시나요?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A씨 사건에서 법원이 내린 선고는 현행 형사소송법 186조에 근거한 것이다. 형소법 186조 1항은 “형의 선고를 하는 때에는 피고인에게 소송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하게 하여야 한다”며 “다만, 피고인의 경제적 사정으로 소송비용을 납부할 수 없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했다.

 

아무리 국선변호인이 선임됐어도 소송비용은 피고인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란 뜻이다. 물론 형편이 정 어려우면 예외적으로 국가가 소송비용 전액을 부담할 수 있다는 뜻도 담겨 있다.

 

문제는 그간 이 조항이 재판 현실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개의 형사재판은 유무죄, 만약 유죄이면 형량을 선고하는 데 그치고 소송비용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은 채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

 

유죄 선고를 받은 것도 억울한데 소송비용까지 물게 된 A씨는 발끈했다. 그는 “국선변호인이 선정되었음에도 피고인에게 소송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하도록 한 형소법 186조 1항이 나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관들이 따져보니 ‘소송비용을 부담하라’는 법원 판결은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판결과 별개가 아닌 한 묶음이었다. 즉, A씨가 1심의 유죄 판결에 불복해 상급심에 상소하면 소송비용 부담 여부도 새로 판단을 받게 될 것이 확실했다.

 

그런데 A씨는 항소를 하지 않았고, 결국 소송비용 부담에 관한 상급심 법원의 판단을 받을 기회도 날아가 버렸다.

 

◆일부러 재판 지연시키면 '유죄'에 '소송비 부담'도

 

헌재 제3지정재판부(재판장 조용호 재판관)는 최근 A씨의 헌법소원 청구를 ‘각하’했다. 각하란 적법한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위헌 여부를 깊이 살펴볼 것도 없이 심리를 종결하는 처분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형소법 186조 1항에 따라 피고인이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되더라도 상소해 구제받을 수 있어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A씨의 헌법소원 청구는 부적법하다”고 판시했다.

 

실제 A씨처럼 형사사건 재판 과정에서 고의로 절차를 지연시키는 등 물의를 야기한 피고인한테 국선변호임이 선임된 것과 상관없이 소송비용을 부담시킨 사례가 더러 있다.

 

피해자와 말다툼하다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상해)로 벌금 50만원에 약식기소된 B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한 뒤 피해자와 목격자를 잇따라 증인으로 신청했다. 마침 재판이 이뤄진 법원이 제주지법이어서 육지에 사는 피해자, 목격자 등은 재판 출석을 위해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이에 검찰은 “지역 특성상 육지에 거주하는 증인을 소환하는 경우 증인에게 큰 불편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항공료 등을 실비로 지급하는 증인 여비도 고액”이라며 “피고인한테 소송비용을 부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B씨한테 유죄와 더불어 소송비용 부담을 선고했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는 “유죄 선고가 뻔히 예상되는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이 무익한 증인 신청으로 소송을 지연시키는 등 재판 받을 권리를 남용하는 사례가 더러 있다”며 “이를 막고자 국선변호인이 선임된 사건에서도 피고인한테 소송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이 부담해야 하는 소송비용은 국선변호인 비용 30만~40만원에 증인 여비 1인당 5만원 정도 선에서 책정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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