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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소통의 메신저’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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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25 20:58:35 수정 : 2018-06-25 17: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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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올림픽 등 지구촌 축제/적대국가도 대화 무드로 전환/경기 통한 신체 접촉 평화 증진/내달 남북농구대회 기대감 커 러시아 월드컵 16강 진출국의 윤곽이 그려지면서 지구촌은 축구축제의 열기에 휩싸여 있다. 월드컵이 축제인 이유는 승패를 겨루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놀이게임(play game)으로서 우승국이 가려지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인류가 생존을 위해 연마한 사냥과 전쟁, 즉 게임의 유전자를 평화적 놀이로 바꾸는 대리만족일 가능성이 크다.

스포츠가 첨예하게 맞서 있는 적대국 사이에 대화를 트거나 국교를 맺게 하고, 전쟁의 상황을 평화 분위기로 반전시켜 놓은 예는 역사에서 드물지 않다. 1971년 4월 미국 닉슨행정부와 중국 마오쩌둥(毛澤東) 국가주석 사이에 있었던 핑퐁외교는 너무도 유명하다. 당시 소련과 국경분쟁 상태에 있었던 중국과 소련의 팽창을 견제하던 미국이 탁구경기를 통해 수교의 물꼬를 튼 사건이었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닉슨은 1972년 2월 헨리 키신저와 함께 중국을 방문하고,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 성명에는 양국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지금은 소련이 해체되고, 중국이 미국과 인도 태평양지역에서 패권경쟁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역사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다.

올림픽과 월드컵은 인간이 만들어낸, 스포츠축제를 통해 국제평화와 우호관계를 증진시키는 인류의 대표적인 문화장치이다. 한국은 올림픽과 월드컵을 다 주최해본 경험이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그만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말이다. 88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그리고 지난 2월에 개최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은 한민족의 자부심을 느끼게 한 대회였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냉전체제의 마지막 유물인 남북분단 상황에 평화 분위기를 증진시키고 남북회담과 판문점선언,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인 북·미 평화회담을 끌어낸 것은 잘 알고 있는 터이다. 극단적으로 대치 중이던 남북한이 얼굴을 맞대고 신체적 접촉과 소통을 하게 한 것도 스포츠축제인 셈이다. 북·미회담 과정에서도 김정은이 좋아하는 미국의 악동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등장하면서 평화회담 성사에 촉매 역할을 한 것도 스포츠의 소통 위력을 말해주고 있다.

스포츠가 왜 이런 막중한 소통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인가. 역사와 현실정치에서는 첨예하게 의식적으로 대립하는 요소가 많은 데 반해 스포츠에는 그런 의식을 불식시키는 어떤 힘이 내재해 있다. 아마도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신체의 일반성과 스포츠경기의 게임·놀이적 성격에 내재한 축제성이 인간의 공동체성과 평화를 증진시키기 때문인 것 같다. 역사와 전쟁에서는 승자가 패자를 정복·지배하는 데 반해 스포츠제전은 경기의 결과가 지배·피지배로 연장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근대올림픽을 부활시킨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승자를 신의 제물로 바치는 그리스올림픽제전의 평화 달성에 주목했다. 인간은 의식적 존재이기 이전에 신체적 존재이다. 경쟁과 전쟁, 패권경쟁에 찌들어 있는 현대 문명사회의 인간에게 스포츠가 신체적 존재로서의 공통점을 부각하고 존재일반에 대한 이해와 평화를 증진시키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 ‘신체가 말한다’, ‘자연이 말한다’, ‘숲이 생각한다’ 등의 말이 유행하는 것은 자연의 정복자로서의 인간의 오만과 횡포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일 것이다.

근대올림픽 역사는 182년(제 1회 그리스올림픽, 1836년), 월드컵역사는 88년(제 1회 우루과이월드컵, 1930년)이 되었다. 제1, 2차 세계대전 중에 올림픽(1916년, 1944년)과 월드컵(1942년, 1946년)이 개최되지 못한 것만 보아도 이들 스포츠축제가 평화의 상징인 것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올림픽은 여러 종목의 스포츠경기를 통해서 평화와 우의를 증진시키는 것인 데 반해 월드컵은 축구라는 한 종목 경기를 통해 그것을 달성한다는 점이 다르다. 어느 것이 평화 증진에 더 효과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월드컵이 경기의 의외성과 박진감을 더한다는 점에서 비용대비로 볼 때 관심의 집중도와 광고효과가 더하다는 평가가 있기도 하다. ‘공은 둥글다’라는 말은 월드컵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

올림픽 학자인 존 맥컬룬은 육체나 권력, 경제적 가치를 포함하여 문화적으로 중재되지 않은 것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올림픽을 통해서 참가 팀은 그 국가의 문화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하나의 집단이 된다고 한다. 지구촌의 상호이해와 형제애를 느낄 수 있는 기회로 올림픽을 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월드컵 학자인 로베르토 다마타는 개인을 찬양함으로써 보편성을 찾으려는 올림픽과 달리 월드컵은 특수성·지역성·개별성이 강조된다고 한다. 올림픽이 경쟁적 요소와 의례적 요소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데 반해 월드컵은 경쟁적 요소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한국이 4강에 오른 2002년 월드컵은 지금 보아도 신명을 일으키는 국민단합 프로그램이다. 오는 7월4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인 남북통일농구대회는 남북평화시대의 상징적 축제로 기대를 갖게 한다. 남북으로 갈라진 한민족의 신체는 의식보다 먼저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 신체는 뇌보다 더 큰 말을 하고 있다. 신체가 말하는 시대, 자연이 생각하는 시대를 외면하고서 인류평화는 달성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신체적 존재이다. 승패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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