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이주민은 온정적 태도가 때로는 불편하다

관련이슈 다문화 칼럼 함께하는 세상

입력 : 2018-04-11 21:03:32 수정 : 2018-04-13 09:38:1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국내 이주민들은 평소 잘 알고 지내는 한국인은 대부분 친절하지만 거리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마주친 사람들이 자신을 배제한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지하철·버스에서 자신의 양쪽 자리만 비어 있을 때는 따돌림당하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수치심과 분노가 교차하는 것을 느낀다고 말한다. 특히, 짙은 피부색의 이주민이나 저개발국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외모로 인한 차별적 시선을 받았을 때 가슴 아파한다.

그렇지만 요즘은 이주민들에게 말을 걸어 대화하는 한국인이 많이 늘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어디에서 살고 어떤 일을 하느냐에서 시작해서 처음 만난 한국인끼리 나누는 대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주민은 한국인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반기지만, 때로는 그 말과 행동에 담긴 편견으로 속상해 한다. 특히, ‘가난한 나라에서 온 불쌍한 사람’으로 자신을 범주화하는 것이 싫다고 말한다. 이주민을 지나치게 온정적으로 대하는 것 역시 비뚤어진 시선이라는 것이다. ‘가난한 너희’와 ‘부유한 우리’(한국인)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이주민의 삶이 팍팍한 것은 사실이다. 낯선 환경과 힘든 삶이 그들과 늘 함께한다. 사회적으로도 그들은 주류 사회에 쉽게 편입되지 못한다. 약 100년 전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파크는 미국 내 폴란드인 이민자들을 연구하면서 ‘주변인’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주변인은 서로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두 사회에 걸쳐 생활하는 사람이다. 폴란드와 미국이라는 두 문화에 걸쳐 있지만,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이라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취업을 기피하는 어렵고 위험하며 지저분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생활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다. 소득계층의 최하층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이민자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코 불쌍한 존재가 아니다. 성실히 일해 소득을 획득하는 한국 사회의 주역 중 하나다. 또, 따져보면 가난하지도 않다. 초과근로를 많이 해 실제 수령 임금이 높을 뿐 아니라 차곡차곡 저축한 금액도 많다. 더구나 출신국에서 그 돈은 ‘환율의 마술’이 작용해 더 큰 가치를 가진다. 한마디로, 출신국 사회에서 그들은 해외취업의 꿈을 실현한 성공한 사람으로 주위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출신국과 정착국 사회의 경계가 무의미해진 오늘날에도 주변인 개념은 이주민의 삶을 설명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지만 출신국과 한국 사회를 포괄하는 영역으로 시야를 확대해 이주민의 위치를 살펴보면, 그들은 두 사회를 포괄하는 국제사회의 중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화 시대가 되면서 이주민의 구조적 위치는 ‘주변인’에서 ‘멀리 떨어진 두 사회를 연결하는 핵심 네트워크’로 바뀐 것이다. 이에 이주민의 적극성·진취성·주체성에 주목하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다문화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한국 사회 전반의 의식과 태도 변화는 필수다. 이주민을 무턱대고 배제하거나 온정적·시혜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주민을 동등한 존재로 대하여 한국 사회의 진정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 이주민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기존 주민과 더불어 생활하는 ‘우리’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