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인터넷에서는 일부 네티즌과 인터넷언론이 미투를 선언한 피해자들을 겨냥해 경쟁적인 신상털이에 나서고 있다. 배우 조민기(52)씨 성추행 사건을 폭로한 배우 송모씨는 SNS를 통해 “이 일과 관련해 많은 언론사가 저에게 직접적으로 연락을 해왔다”면서 “제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잊었는지 자극적인 증언만을 이끌어내려는 태도가 저를 힘들게 했다”고 토로했다.
가해자 가족에 대한 공세는 더욱 거세다. 과거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해 부녀간 애정을 과시한 조씨의 딸에 대한 악성 댓글이 대표적이다. 조씨 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아빠가 그런 것을 알고 있었어요?”, “피해자 걱정부터 하세요”라는 조롱의 글이 올려져 있다. 조씨의 부인에게도 “남편분 의혹 사실인가요?”, “어린 피해자를 생각해 보세요”라는 공격성 글이 이어졌다. 가해자가 응당 도덕적 비난을 받아야 하겠지만, 가족까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에는 귀를 닫은 듯하다.
우리 사회의 2차 피해에 대한 인식은 둔감하기만 하다. 가해자 잘못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시각까지 있다. 취업준비생 장모(30)씨는 “인지도가 높은 공인일수록 잘못한 경우 주변인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직장인 강모(28·여)씨는 “가해자 주변인물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유감이지만, 그것 때문에 가해자 실명을 보호해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성범죄에 미흡하게 대응한 사법 제도에 대한 강한 불신이 이 같은 현상을 낳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웅혁 건국대(경찰학과) 교수는 “미투운동을 바라보는 국민은 형사사법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생긴 일로 여긴다”며 “그런 불신이 쌓이면서 사적으로라도 응징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경향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사회학과) 교수는 “미투 운동은 개인 권리가 침해당한 것에 대한 구제 운동인데, 그것이 다른 누군가의 피해로 이어져선 안 된다”며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가해자 주변 인물까지 악담을 하는 것은 미투 운동의 취지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미투 운동이 일시적 현상이 아닌, 사회 전체에 긍정적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성숙한 문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사진=게티이미지스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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