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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유신체제 때 범법자 누명… 명예회복 ‘하세월’

입력 : 2018-02-20 19:29:50 수정 : 2018-02-20 22: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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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과거사’ 직권 재심청구 늑장대응 논란 / 헌재, 5년 전 긴급조치 위헌 판단 / 檢, 文정부 출범 뒤 부랴부랴 조치 / 지난달까지 173명 중 11명 ‘무죄’ / 세상 떠난 뒤에야 억울함 풀기도 /“63명 연루 52건 추가 청구 방침” 1970년대 후반 군부독재의 서슬이 시퍼런 상황에서 김모(당시 30세)씨는 박정희정권의 유신헌법이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사회 민주화를 가로막는 악법이라고 믿은 김씨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 앞으로 용기를 내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10·26사건이 일어나기 약 1년 전인 1978년 9월16일의 일이다.

김씨는 ‘유신헌법으로 인해 반공교육에 차질이 있다’라는 제목으로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그는 편지에서 “유신헌법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보루인 삼권분립을 찾아보기 힘들고, 계엄령하에 국민의 찬반 토론 없이 제정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긴급조치란 것으로 모든 일을 강압적으로 처리하고 있어 민주주의 이념에 배치된다”, “이 체제대로 간다면 반공교육에 차질이 올 것이므로 철폐돼야 한다” 등 날선 비판을 거듭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10월 유신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강화하고 국회의 권한과 지위를 축소하면서 초법적 독재 체제를 강화했다. 사진은 1972년 12월27일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유신헌법을 공포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 일이 평생 주홍글씨를 남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김씨는 대통령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1975년 선포된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을 부정하거나 폐지를 청원·선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는 경우 법원의 영장 없이도 체포할 수 있는 무서운 ‘칼’이었다. 이듬해 2월 대전지법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은 김씨는 “납득할 수 없다”며 서울고법에 항소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언론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유신체제의 희생자인 김씨는 묵묵히 수감생활을 견뎠다. 약 40년이 흐른 지난달 12일에야 검찰의 재심 청구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작 김씨는 2009년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이 보상은커녕 생전에 명예회복도 하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비록 검찰이 과거사 정리 일환으로 예전에 자신들이 기소해 형사처벌한 긴급조치 위반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직권으로 재심 청구를 진행 중이지만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20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1일 기준 173명이 연루된 긴급조치 사건 156건에 대한 재심 청구 절차가 진행 중이다. 모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6년 검찰에 재심 청구를 권고한 사건들이다. 지난달 22일까지 11명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2013년 긴급조치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도 지난 정부까지는 사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 이후에야 긴급조치 피해자 145명에 대해 부랴부랴 재심 청구에 나섰다. 검찰은 “2013년 위헌 결정 이전에는 재심 청구를 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헌재 판단이 내려지고 4년 동안 뒷짐만 진 채 ‘늑장대응’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검 관계자는 “문무일 검찰총장은 물론 검찰조직 전체가 최근 과거사를 되돌아보는 작업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며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이어 63명이 연루된 긴급조치 피해사건 52건에 대한 추가 재심 청구도 이어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유신헌법은 1972년 박정희정권이 장기집권을 목적으로 만든 헌법으로 ‘대통령이 국가위기 상황이라고 판단될 때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을 뒀다. 이 헌법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대통령긴급조치 1∼9호를 발동, 군대까지 동원해 집회·시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까지 억압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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